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서성이는 순간, 누구나 한 번쯤 있을 테지요. 언젠가부터 독특한 패키지의 맥주나 하이볼이 우리 시선을 붙잡고 있습니다. 여기 당신의 손길이 갈 만한 몇 가지 시원한 술과 뒷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읽고 나면 다시 생각하게 될 거예요. 그 술, 예술입니다.
지금 CU 주류 쇼케이스의 문을 열면 한 편의 아트 갤러리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CU가 ‘술과 아트’의 만남을 주제로 젊은 미술 작가들과 콜라보한 주류 제품을 출시했거든요. 자고로 풍류를 제대로 즐기자면 맛과 함께 멋도 만날 수 있어야 하니까요. CU가 프린트베이커리와 협업을 결심한 이유는 그래서입니다. 술의 맛도, 멋도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풍류를 담은 CU와 프린트베이커리의 협업, 그 첫 번째 제품은 바로 청신 작가와 콜라보한 청신 블랙네온 레몬하이볼이었습니다. 인기에 힙입어 출시한 두 번째 제품은 바로 꿈과 낭만을 담은 김제언 작가의 MOON 시리즈입니다. 싱글몰트 라거 캔맥주와 유자 하이볼 총 2종 제품을 김제언 작가의 작품을 담은 패키지로 만나볼 수 있답니다.
백색의 깨끗한 바탕에 목탄으로 레몬과 튤립을 부드럽게 그려내 밝고 경쾌한 무드를 발산하는 청신 작가의 작품, 그리고 동화적인 화풍과 원색으로 현대인의 꿈과 사랑을 그려내는 김제언 작가. 두 예술가를 만나 이번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소감, 그리고 술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저 너머의 꿈과 희망
김제언 작가
이번에 CU 상품에 들어간 두 작품 모두 밤하늘과 우주, 달과 별 풍경이 인상적입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저는 작품을 그릴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자’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그런 사람에겐 보통 꽃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별이나 달을 선물하고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인지 제 그림에는 달, 별이 자주 등장합니다. 별은 희망, 달은 꿈이나 이상향의 이미지죠.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면 ‘모든 것을 다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잖아요. 그 마음이 작품에 표현되었으면 했어요. 제 작품을 만난 사람들이 잠시라도 잊었던 꿈이나 희망을 환기할 수 있으면 해요.
평소 술을 즐겨 드시는지 궁금해요.
영화나 책을 볼 때에도 메모를 하신다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좋은 글귀를 남기기도 하고, 때로는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고 기록을 하기도 하는데요. 최근에는 등반에 대한 책을 읽다가 ‘안자일링’이라는 단어와 그 뜻을 메모했어요. 한 사람이 넘어지더라도 다른 사람이 지탱해줄 수 있게 서로 끈으로 묶는 형태를 ‘안자일링’이라고 해요. 이 단어를 읽으면서 연대나, 사랑, 희망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저는 에스키스* 과정이 중요해요. 제 작품에는 나름의 스토리가 있거든요. 기술적으로 잘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림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보다 집중해요. 제 이야기가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보는 사람들 또한 감동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에스키스: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서 그리는 여러 가지 초안이나 밑그림.
주로 어떤 재료를 이용하시나요?
유화를 많이 그려요. 주로 컬러풀한 색채를 쓰기도 하고요. 동화적이면서도 지루하지 않죠. 어릴 적 미술학원에 다녔을 때 수요일마다 자유롭게 상상하는 시간이 있었거든요. 동심으로 상상에 푹 빠졌었던 그때가 그리웠어요.
CU와 주류 콜라보 제안을 받으셨을 때 어떠셨어요?
제 생각과 통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저는 예술이란 혼자 펼치는 게 아니라 대중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미술관을 자주 다니거나 예술적 조예가 깊은 사람이 제 작품을 보고 감동받는 것보다, 그림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이 제 그림을 구입하고 싶어할 때 더 기분이 좋아요. 저라는 작가를 잘 몰랐던 소비자가 편의점에서 제 그림을 보고 잠시 기분이 좋으셨다면 그게 제가 원하는 일이기도 하죠. 여러 사람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얻은 것도 물론 기쁘고요.
말씀하신 대로 이번 콜라보레이션은 일상에서 예술을 쉽게 만날 수 기회이기도 해요. 우리 일상에서 예술이 왜 중요할까요?
사실 일상보다 중요한 예술은 없지만, 예술은 사람들에게 평소 하지 못했던 다른 생각을 하게 해줘요. 긍정적인 영향도 주고, 때로는 비판적인 생각도 할 수 있죠. 저는 별이나 달처럼 사람들에게 꿈이나 희망을 환기하는 작품을 그리고 있고요. 예술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일상에 자연스럽게 예술이 스며들었으면 합니다.
이번 콜라보레이션 상품을 접하게 될 고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자연스러운 만남이었으면 좋겠어요. 음료를 마시려 진열대를 열고, 제 작품과 눈이 마주치고, 그러면서 미력하게나마 예술도 향유하시고, 궁금하면 작가를 찾아볼 수도 있고요. 작품 이미지가 밝은 만큼 기분이 좋아지셨으면 해요. 제가 작품에 담은 뜻을 다 해석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캔을 찌그러뜨리기 전에 ‘귀엽다’, ‘예쁘다’라고만 생각해 주셔도 충분해요.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고, 그저 술과 그림을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레몬빛의 경쾌한 축제
청신 작가
상품이 출시된 지 벌써 1개월여가 지났습니다. 콜라보레이션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처음 협업제안이 들어왔을 때 ‘아, 신기하고 반갑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주류는 아주 중요한 문화잖아요. 특히 술의 성격과 맛을 통합적으로 담아내고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일은 아주 흥미롭고 창의적인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레몬하이볼 완성본을 받았을 때, 하이볼캔 전체를 감싼 작품의 이미지가 선명하고 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주 뿌듯하고 약간 소름도 돋았던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차분하게 유리잔에 얼음을 담고 하이볼을 쪼르르 담아 마셨는데, 맛이 부드럽고 향이 깊으면서도 상큼했어요. 그때 그 느낌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편의점에서 해당 상품을 접하셨을 때의 감회도 새로웠을 것 같습니다.
동네 편의점에서 매장 진열된 모습을 처음 봤어요. 냉장고 유리창에 신제품 알림 스티커가 붙어있었는데, 그 너머로 반듯하게 세워져 있더라고요. 뿌듯하고 신기한 마음에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어떤 손님이 “어, 이거 뭐지?”하면서 하이볼을 꺼내 보더라고요. 저는 숨죽이고 곁에 서있었어요. 그분이 동행인에게 “이거 뭔가 맛있을 것 같다”라고 하고는 하이볼 네 개를 바구니에 담아가더라고요. 약간 입이 간질간질 했습니다. (웃음) 그리고 그 분이 계산하고 나갈 때까지 거기 서있었어요. 전시 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종류의 뿌듯함이었습니다.
평소 술을 즐겨 하시나요?
작업량이 많은 날이나 약간 피곤할 때, 작업 후 맥주 한 캔 정도를 약간의 맛있는 안주와 곁들여 마시곤 해요. 작년부터는 하이볼 칵테일도 즐겨 마셨습니다. 술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술자리가 주는 따뜻한 분위기와 러프한 낭만이 좋잖아요. 특히 하이볼은 뭔가 산뜻하게 기분을 전환해주는 느낌도 들고요.
작년 겨울 부산에 출장을 갔을 때, 바다가 보이는 펍에서 하이볼 다섯 잔을 거푸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테이블에서 일어서는 순간 지구의 자전을 살짝! 느꼈다가 다시 의자에 앉았죠. 같이 있던 일행들과 한참을 웃었어요. 한 잔만 더 마시면 자전뿐 아니라 공전까지도 느낄 수 있다면서요. 돌이켜보면 별로 웃기지는 않는 얘기지만 그때는 참 행복하게 웃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만나면 ‘지구 해피 자전 체험은 하이볼!’이라며 농담하곤 합니다.
일상에서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요즘의 저는 농촌의 자연환경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도시에서의 삶과는 사뭇 다른 날씨와 계절을 다양한 감각으로 느끼고 있어요. 확실히 지금의 생활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 변화의 과정을 잘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연’과 ‘인간’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날씨가 좋은 날이면 농촌 풍광이 보이는 작업실 테라스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풀어놓은 닭들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쫓기는 작업보다 자연을 흡수하는 과정이 제 생활의 루틴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분 좋은 변화이지요.
작가님의 작품에는 목탄과 노랑이 자주 쓰이고, 소재로는 꽃과 레몬이 자주 등장하네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다양한 드로잉 재료를 사용해 작업을 해왔는데요. 특히 종이와 캔버스에 목탄과 물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러던 중 작업환경을 농촌으로 바꾸었는데, 우연히 밭 한가운데에 피어난 노란 튤립 한 송이를 발견했어요. 모종 가게에서 서비스로 받았던 튤립 구근이 있었는데, 그중 한 뿌리가 밭에 묻혔던 것 같아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는 시점에 밭 한가운데 마치 조화처럼 너무나 선명하고 생경하게 피어난 노란 튤립이 신기했고, 작업실에서 종이와 목탄을 가지고 나와서 바로 슥슥 그렸던 것이 작품 시리즈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노랑은 목탄과 잘 어울리는 색상이예요. 그래서 예전부터 바나나 껍질이나 레몬 등을 함께 화폭에 등장시켰어요. 특히 레몬은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전환이 되는,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라고 생각했고, 그렇듯 ‘감각을 일깨운다’는 부분이 예술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 작업에 등장하는 레몬과 노랑은 인간이 감각을 일으키고, 인식하고, 전파하고, 또 교감하는 그 모든 과정과 의미가 있어요. 한마디로 저에게 노랑과 레몬은 ‘예술감각’, 그 자체를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올해는 파리 국제 레지던시 일정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석 달 정도 여름을 보내게 될 거예요. 지금의 제 작업환경과 견주며 여러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의 변화를 잘 받아들여 기존 작품에서 한 발 더 진보한 예술을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