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U신촌노고산점에 들어서면 잠시 어리둥절 주변을 둘러보게 됩니다. 여기가 공예품 전시관인지, 편의점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거든요. 상품을 고르다가도 벽면을 채운 귀여운 공예품들에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자칭 ‘방구석 공예가’, 아무리 사소한 자연물도 보물로 재탄생시키는 마법의 장인정신을 들여다봅니다.
CU신촌노고산점의 풍경은 조금 색다릅니다. 일단 한가로운 시간 점장님의 모습부터 독특한데요. 보통 점장님들이 점포 쓸고 닦기에 분주하다면, CU신촌노고산점 점장님은 계획을 먼저 세워 점포를 정갈하게 정리해 놓고 안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내 꼬물꼬물 손으로 무언가를 계속 살펴보며 다듬는 점장님, 손에 어떤 것이 들려 있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음표가 뜰 수밖에 없어요. 도토리, 솔방울, 나뭇가지, 나뭇잎…. 등산길에 흔히 보이는 자연물이 우선 한가득이고요. 또 책상 한 켠에는 달걀팩, 스티로폼, 이쑤시개와 나무젓가락, 코르크 마개와 캔뚜껑 등 편의점에서 발생할 법한 재활용 쓰레기들이 세척을 마치고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조물조물 점주님의 손을 거치면 이 재활용 쓰레기와 자연물은 한데 조화를 이루며 솔방울 치마를 입은 소녀가 되기도 하고, 작은 더듬이를 단 개미가 되기도 하고, 한가롭게 마시멜로우를 굽고 있는 남자가 되기도 합니다.
‘친화력 갑’, MBTI는 극E! ‘인싸 편의점’의 주인공이자 손끝에서 각양각색 스토리를 창조해내는 CU신촌노고산점 하승필 점장님을 만나봤습니다.
와, 점포 들어오자마자 탄성이 나왔어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공예품을 만드셨네요.
에이, 원래는 이 점포도 평범했죠. (웃음) 그런데 어느 날 ‘이러다가 인생이 끝나면 허무하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다들 어릴 적 꿈이 있잖아요. ‘내가 뭘 좋아했지?’ 떠올려 보니 자연에서 노는 걸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자연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다가 우연찮게 ‘자연환경해설사’라는 일을 알게 됐죠. 매일 수업 듣고 공부하면서 자격증도 따고, 곤충도 더 깊이 공부해서 강연도 다니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도 주말이면 자연환경해설사 일을 하러 나갑니다.
주말마다 자연을 접하다 보니 나뭇가지나 도토리가 눈에 띄어요. 공예를 좋아해서 ‘이것으로 뭐 만들어 볼까’ 싶어 호주머니에 넣어 오지요. 주중 CU를 돌보다 한갓진 시간에 꼼지락거리며 만들기 시작한 게 이렇게 많이 쌓였어요. 벌써 3년 정도 됐나… 만들다 보니 디테일도 달라지고 확실히 실력이 늘더라고요. 처음엔 아내가 요 공예품들을 집에 가져오는 것도 싫어했어요. 쓰레기 가져온다고. (웃음) 근데 지금은 ‘쓸모는 없어도 예쁜 쓰레기’라고 그래요.
말씀하신 대로 자연에서 보이는 정말 흔한 재료들이에요. 어떤 재료를 주로 쓰세요?
도토리를 많이 쓰죠. 하지만 다람쥐가 먹을 수 있는 도토리는 절대 안 가져와요. (하나를 집어 보여주며) 이건 다람쥐도 먹을 수 없는 도토린데요. 저는 자연환경해설사를 겸하고 있으니 이게 버려지는 도토린지, 자연에 유익한 도토린지 구별할 수 있거든요. 또 이렇게 만들기를 좋아하니까 가끔 어르신 등산객들이 챙겨 두었던 도토리나 솔방울을 주시기도 하고요.
자연물뿐만 아니라 재활용 쓰레기도 보이는데요.
네, 이건 버려지는 스티로폼으로 이글루를 표현한 거고요. 여기 쓴 건 계란판과 달걀 종이팩. 손으로 다 뜯은 다음에 결을 만들어서 색을 칠한 거고요. 이건 컵라면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틀이에요. 어떤 작품을 먼저 구상하고 재료를 구하는 게 아니라 저는 재료부터 보여요. ‘이런 재료가 있으니까 이런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하는 거죠. 와인을 자주 사가는 단골들에게도 “남는 코르크마개 있으면 달라”고 부탁해요. (웃음)
점포에서 버려지는 물품들을 보시면, 이걸로 뭘 만들어 볼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아깝잖아요. 저는 이거 만들면서 돈은 거의 안 써요. 저희 점포나 주변 점포에서 버려지는 깨끗한 쓰레기들 있으면 주워 와서 씻어 사용하죠. 이 나무 판자도 요 앞에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단골 고객이 안 쓴다며 주신 거고. 이 스티로폼도 이 앞 점포들이 내놓은 것들이고요.
CU 앞에 ‘인싸 편의점’이라고 써 두셨어요. 점장님이 성격이 ‘인싸’이신 것 같은데요. (웃음)
제가 CU를 운영하기 전에는 옷 장사를 했어요. 업종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도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건 물건 정리와 배치예요. 옷도 디스플레이가 중요하잖아요. 예뻐 보여야 손님이 들어오죠. 편의점도 똑같아요. 이쁘게 진열하고, 사람들이 보기 좋은 것 앞으로 잘 보이게 빼놓고. 우리 점포에는 신상 스낵만 따로 모아 놓은 진열대가 있어요. 그 앞에는 전자렌지가 있죠. 도시락을 전자렌지에 넣어 놓고 1~2분 기다릴 때 할 게 없잖아요. 그때 신상을 구경하시도록 유도한 거죠. 행사 상품들은 고객 시선에 맞춰 정리해 두고, 단백질 음료도 일렬로 배치하고. 막 운동하고 들어오는 고객들 있으면 “찾는 거 저기 다 모아놨다”고 알려드려요. (웃음)
고객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지난 번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한 모녀 고객이 들어오셨는데, 어머님이 “집 앞에도 편의점 있는데 뭐하러 길 건너 여기까지 오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따님이 “엄마, 여기는 달라. 집 앞에 없는 물건이 여긴 다 있어.” 대답해요. 어머님이 점포를 좀 둘러보더니 “어머, 여긴 진짜 뭐가 많네.” 하시고. (웃음) 또 기억에 남는 게 있는데, 지난 주였나? 한 커플이 들어와서는 남자 분이 “내가 진짜 다른 운이 하나도 없는데 동네 편의점 운이 있어.” 하더라고요. 여자 분도 좀 둘러보더니 “와, 이거 우리 동네엔 없는데 여긴 다 있다” 하고. 그러더니 둘이서 디저트를 비롯한 신상 상품을 이것저것 사가더라고요. 이렇게 진열도 발주도 신경 쓰는 걸 알아주시면 고맙죠.
그러네요. 상품도 다양하고, 진열도 보기 좋고. 발주를 꼼꼼하게 하시는 것 같아요.
오래 편의점을 운영했으니 속도를 내면 발주도 빨리 할 수 있죠. 근데 저는 발주하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려요. 지난주부터 한 달 판매 데이터를 다 보거든요. 이 시기엔 어떤 상품이 많이 나가는지, 지난 주에는 어떤 신상이 많이 팔렸는지 등 철저하게 계산하고, 이벤트 내용도 면밀하게 체크하고요. 행사가 있으면 미리 발주하기도 해요. 창고가 있으면 더 많이 해놓고 싶은데, 적재공간이 없어서 아쉬워요.
10년간 쉬지 않고 계속 일하셨어요?
코로나19 때는 옆 건물에서 CU를 하고 있었어요. 당시 건물주가 재건축을 한다고 퇴거를 요청하더라고요. 당시 형님에게 신장을 기증하기로 해서 어차피 좀 쉬어야 했어요. 수술을 하고 쉬려는데 SC한테 연락이 온 겁니다. ‘옆 건물에 자리가 있는데 다시 하시는 게 어떠냐’고요. 한 달 만에 나와서 바로 영업을 준비했어요.
힘드셨을 텐데 의욕이 대단하세요.
근데 이게 참, 영업하자마자 바로 코로나19가 터졌어요. 이곳 신촌은 아무래도 학생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비대면 수업이 늘어나니 거리가 한산해져서… 그땐 지금 매출 10분의 1도 못 올렸어요. ‘와, 이걸 어쩌나’ 했는데 그렇다고 안 할 수 없잖아요. 이런 저런 아이디어 내면서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샐러드에 주력해서 진열해보기도 하고, 디저트 잘 나가는 걸 눈여겨보다가 신상 디저트를 전폭적으로 발주하기도 하고. 많은 시도 끝에 지금도 상품 배치를 한두 줄 바꾸는 게 아니라, 2주에 한 번은 싹 갈아 엎어요. 그렇게 해서 매출이 오르는 걸 데이터로 확실히 봤으니까요.
정말 다양한 기획들을 하셨네요.
저는 점포 타깃을 2030으로 정했어요. 신상 디저트, 신상 과자와 아이스크림 등 다른 점포에 없는 신기한 물품들을 많이 진열하니까 멀리 살던 분들도 좀 돌아서 이쪽으로 오세요. 시즌마다 주력하는 상품군도 바꿔서 해당 상품을 잘 디스플레이해 놓죠. 특수성도 놓칠 수 없어요. 만약 요 앞 빌딩이 공사에 들어간다고 하면 아침에 공사장에 가요. 귀동냥으로 공사 규모를 대강 파악했다가 생수, 빵 등등을 충분히 주문해 놓고, 공사장에 가서 점포 홍보도 하죠.
점장님이 만든 공예작품들. (왼쪽) 도끼와 방패를 들고 있는 몬스터, (오른쪽) 칸칸마다 다른 풍경과 스토리로 장식한 공예품.
전시 칸막이는 나무젓가락으로 만들었다.
점포에 공예품을 함께 걸어 놓는 이유도 있으세요?
내가 좋아서 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 나중에 작업실을 내는 게 꿈이에요. 이거 하나 만드는 데 지금은 다섯 시간 정도 걸리는데, 앉아서 열중하고 있으면 살며시 다가와 “그거 뭐냐” 묻는 고객들이 있어요. 계산할 때면 전시해둔 공예품에 대해서 은근슬쩍 물어보시고. 그러면 적극 설명해 드리면서 이건 계란판으로 만들었다, 또 이건 젓가락이다, 이쑤시개다 소개하면 다 신기해하세요. 사진 찍어도 되느냐 물어보시면 얼마든지 찍어 가시라고 하죠. 한번 더 웃고 좋잖아요.
우리 점포는 스태프를 많이, 오래 써요. 제가 직접 근무하면 그만큼 수익이 더 나겠지만 몸이 상해요. 편의점 운영은 체력 싸움인 만큼 생각을 잘 해야 합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도록 점포 환경을 갖춰 놓고 공예 활동도 하는 거죠. 가끔 예쁘다면서 하나 줄 수 있냐, 사고 싶다 하는 분들도 있는데 드리진 않아요. 우리 점포도, 공예품도 저한테는 참 소중한 보물이니까요.
인터뷰·작품 이미지 제공. 하승필 점장님(CU신촌노고산점)
글. 김송희
편집. 성지선
사진.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