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시나요? 왠지 ‘애주가’라고 당당하게 말하기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지나치게 마시지만 않는다면,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자리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타공인 당당한 애주가이자 주류특화점포를 운영하는 제가 연말 단 하나의 술을 골라드립니다.
주류특화점포의 선두주자로 나서다
2022년 10월, CU와 연이 닿아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코로나19로 길가에 사람이 뜸하고 편의점 주류가 막 주목받을 때였어요. 홈바(Home Bar)가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위스키와 와인 열풍도 함께 불었죠. 술을 사랑하는 저 역시 위스키에 슬슬 관심이 가더군요. 마침 운영하기로 한 점포 규모가 워낙 넓어서, 주변의 다른 편의점들과 차별성도 둘 겸 SC님의 추천으로 주류특화점포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이유는 일단 제가 애주가였기 때문입니다. (웃음) 보다 현실적으로는 저희 CU우만타운점이 위치한 상권이 빌라 등 주거지와 웨딩홀을 비롯한 상업시설이 복합적으로 자리한 곳이었고, 주변에도 여러 편의점이 포진해 있기 때문에 우리 점포만의 개성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동네 상권만 믿고 운영하기에는 경쟁력이 부족하니 멀리서도 찾는 편의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넓은 규모에 휴게 공간도 넉넉하게 배치하고, CU BAR에 힘을 주어 주류특화점포를 강조한 건 그래서예요. 당시 전국에 주류특화점포가 10개 내외일 정도로 드물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과감한 결정인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었고요. 위스키의 인기가 한창 불타오를 때에는 아주 먼 곳에서도 우리 점포를 찾아오시는 고객들도 있었고, 이벤트를 할 때에는 전국적으로 특정 위스키를 가장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점포가 바로 이곳이었기에 용인, 안양, 화성에서도 한 시간씩 운전해 오시는 고객들도 있었답니다. 저도 위스키에 관심이 많아서 고객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연락처를 주고받기도 했죠. (웃음)
이심전심 통하는 애주가의 마음
애주가는 보통 두 부류로 나뉘어요. 술 자리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술 자체를 즐기는 사람. 저는 후자에 속합니다. 술 중에서도 위스키를 좋아해서 사람들과 각종 정보를 자주 나누죠. 왜 그리도 위스키가 좋으냐 물으신다면 ‘다채롭기 때문에’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각 위스키마다 처음 후각에 느껴지는 향, 입술에 닿는 첫맛, 혀끝에 남는 마지막 맛과 목 깊이 남는 향이 다 다르거든요. 심지어 같은 술을 마시고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향과 맛을 느끼기도 하니, 서로 감상을 나누는 게 참 재미있어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위스키 카페 활동도 열심히 하고, 우리 점포에서 이벤트가 있을 때면 카페에 적극 홍보도 합니다.
특히 지난번 ‘렛주酒고’ 행사는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어요. 그땐 일본 위스키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을 시기였습니다. 렛주고 행사에 몇 병이 풀렸는데, 그 소문이 위스키 카페로 흘러 들어간 거예요. 그야말로 카페 전체가 들썩일 만큼 화제를 불러모았고, ‘오픈런’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오전 10시에 행사 시작을 알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분들부터 선착순으로 술을 구매할 수 있었거든요. 심지어 새벽 2시에 오셔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린 분들도 계셨으니 무슨 아이돌 콘서트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럴 때마다 저는 꼭 ‘공정성’을 제1의 원칙으로 세우고, 상품을 따로 빼놓는다든지 지인에게 판매하는 등의 행동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증명하려고 전체 매대에 상품을 깔아 놓고, 발주된 수량을 전부 보여드렸죠. 밤새 CU 앞에서 기다리시다가 꿈에 그린 위스키를 품에 안고는 “고맙다” 환하게 인사하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참 뿌듯합니다.
우리 점포 = 내 주류장
우리 점포가 주류특화점포인 걸 모르고 오시는 동네 고객들도 있습니다. 나래비로 서 있는 술병을 보시면 모두가 “와, 무슨 술이 이렇게 많아?”하며 놀라세요. 편의점인데 값비싼 위스키와 와인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이 신기하신지, “이게 다 얼마냐”고 감탄하기도 하시죠.
많은 점주님들이 주류특화점포의 재고 문제를 걱정하실 것 같아요. 위스키·와인류의 가격대는 다소 높은 편이고, 취향도 탈 수 있어 모두 판매되지 않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일단 들여놓습니다. “안 팔리면 내가 먹으면 되지” 하는 심산이랄까요. (웃음) 저희 점포는 주류특화점포이지만, 저의 소중한 술 창고이기도 하니까요. 대부분의 점포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겠지만 특히 주류특화점포는 재고를 고민하면 운영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해요. ‘여기는 내 주류장이다’ 마음먹고 운영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실제로 위스키 카페나 동호회에서 회원들이 공개한 주류장을 보면 우리 점포보다 훨씬 많은 술을 가정집에 구비한 경우도 많거든요. 키덜트가 레고나 피규어를 모으듯이 위스키 마니아는 위스키를 모을 뿐이죠.
계절 따라 달라지는 고객의 주류 사랑
주류특화점포를 운영하다 보면 주류 종류 판매수치에서도 계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름에는 탄산수와 맥주, 화이트 와인의 인기가 많고, 비가 오면 단연 막걸리가 1위를,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레드와인의 판매율이 올라가기 시작해요. 연말은 술의 종류보다 양이 많아진다는 게 특이점으로 꼽을 수 있겠네요. 다른 때에는 홀로 술을 사러 오는 고객이 많지만, 연말에는 친구들이나 가족과 삼삼오오 팔짱을 끼고 점포를 방문하시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간혹 이렇게 여럿이 함께 오시면 CU BAR 앞에서 30~40분씩 토론을 벌이기도 하세요. “이거 처음 봤다. 마셔보자!” 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아니야, 그래도 마시던 게 맛있지. 실패는 금물!” 하시는 분도 있고. (웃음) 우리 점포에 술을 구매하러 오시는 과정부터가 연말 모임의 시작인 것 같아서 저 역시 모임에 초대라도 받은 것처럼 마음이 설렙니다.
연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은
늘 마시던 소주나 맥주를 찾기보다는 요즘 핫한 신상, 다른 데서 구하기 어려운 전통주와 위스키, 와인을 찾는 분들을 보면 요즘 술 문화가 참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저 빨리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독특한 술을 함께 고르고 한 잔씩 맛과 향을 음용해 보면서 리뷰를 나누곤 하잖아요. 생소한 술의 경우 어떤 맛인지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고요. 저 역시 주류특화점포 점주로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주류 공부도 열심히 하고, 특히 신상 주류는 되도록 미리 맛보며 고객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구상하기도 합니다.
연말에 잘 어울릴 주류를 골라 달라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연말 딱 하나만 꼽는다면 저는 ‘글렌드로낙 CS3’라는 위스키를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전통적인 쉐리 계열 위스키인데요. 쉐리의 큼큼한 맛과 체리 계열의 프루티한 향이 돋보입니다. 특히 긴 잔향이 매력적이죠. 저는 술을 마시고 나서 잔에 남아있는 향을 좋아하거든요. 처음 술이 담겨 있을 때 감도는 향과, 잔에만 남아 있는 향은 조금 달라요. 마신 뒤에는 알코올 향이 날아가기 때문에 위스키 본연의 향기로움을 느낄 수 있답니다. 아쉬움일랑 날려보내고 아름다운 기억만 남기자는, 연말의 감성이 묻어나는 술이죠. (웃음)
기분 좋은 취중연말을 위하여!
‘술’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먼저 가지는 분들도 있어요. 아마도 주취 문제로 생기는 각종 사건사고 때문이겠죠. 개인적으로는 술 그 자체보다 술을 마신 이유가 중요한 것 같아요. 기분이 좋지 않거나 유쾌하지 못한 일이 있다고 해서 과하게 술을 마시면 문제가 발생하기 쉽거든요. 하지만 기분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가볍게 즐긴다면 술의 ‘순기능’을 십분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올 한 해 힘든 일도, 좋은 일도 많았습니다. 이번 연말 모임에서는 헛헛한 마음 서로 도닥이며 다가올 새해를 기분 좋게 맞이하자는 의미로 특별한 술 한잔 어떨까요. 어떤 술을 마시면 좋을지 모르겠다면, 저희 점포를 비롯한 가까운 CU BAR를 찾아주세요. ‘주류 덕후’ 점주님들의 열혈 추천과 더불어 합리적인 가격의 이벤트에 두 번 즐거우실 테니까요. 술은 적당히, 행복은 과하게! 모두 멋진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주류특화점포 이영범 점주님이 매긴
12월 CU 주류 평가표
펑리 하이볼
SWEET│●●●●○SPECIALITY│●●○○○
PRICE│●●●●○
CU의 대표 ‘生레몬하이볼’의 연장선에 있는 주류이자, 여경래 셰프님과 협업해서 만든 하이볼입니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날, 고급 중식당에서 맛보는 화려한 고량주가 살짝 연상되죠. 직관적인 파인애플의 단맛과 새콤한 과일의 향이 그대로 담겨 있어 달콤한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취향저격’일 것 같습니다. 도수도 부담스럽지 않으며 음용 시에도 알코올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음료수처럼 편하게 와닿습니다.
길리듀 스카치위스키
SWEET│●●○○○SPECIALITY│●●○○○
PRICE│●●●●●
이 술은 일단 가격부터 소개해야 합니다. 11월 행사 기준 9,900원을 기록했던 가성비 스카치위스키예요. ‘스카치위스키’는 보통 숙성 연도가 3~4년 이하인데요. 길리듀 스카치위스키는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연수의 술입니다. 향을 표현하자면, 음… 쉐리와 스카치위스키 싱글 몰트를 서로 블렌디드해서 버번 캐스크에 담은 듯해요. 블렌디드 위스키를 버번에 담으면 달콤한 향이 술에 입혀지거든요. 첫 한 모금을 마시면 우선 버번의 그 달콤한 향이 올라오고, 그 다음에는 캐러멜향이, 마지막으로 쉐리의 복잡한 풍미가 이어집니다. 잔향은 길지 않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버번, 쉐리, 캐러멜의 다양한 향을 즐길 수 있는 위스키라고 할 수 있죠.
디아블로 악마의유혹
SWEET│●●○○○
SPECIALITY│●●●●●
PRICE│●●●●○
청양고추가 들어간 증류주, 상상해 보셨어요? 술에 청양고추라니, 처음에는 놀라실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웃음) 아마 이 술의 콘셉트 자체가 매콤하고 새로운 술을 추구한 것 같아요. 고추가 들어간 술은 저도 처음 봤는데, 우선 향만 맡으면 고추 향이 전혀 나지 않아요. 하지만 한 모금 넘기면 고추의 알싸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증류주와 맛은 유사하지만 그 끝에 알싸한 맛이 톡 치고 올라오는 것이 참 특이해요. 전통주 중에 ‘도원결의’라는 술이 있는데, 저는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말에 친구들과 좀 독특한 술을 마시고 싶으시다면 강추합니다!
※ 경고: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인터뷰. 이영범 점주님(CU우만타운점)
글. 김송희
편집. 성지선
사진.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