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파주LCD5호점의 주인장, 박병준 점주님이 체육관 안으로 들어서자 일순 시선이 쏠립니다. 먼저 와서 연습하던 회원들이 저마다 “선배님 오셨어요!” “저희 네트로 오세요”하면서 그를 반기죠. 피클볼과 함께 인생 제2막을 열고 있다는 박병준 점주님을 BGF LIVE가 만났습니다.
CU 유니폼 입고 경기장에 등장!
문을 열자마자 너나할 것 없이 반기는 목소리가 먼저 들려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곳 파주 피클볼 동호회의 ‘에이스’입니다. 회원 가운데 최고령임에도 가장 체력이 좋죠. 외투를 벗은 박 점주님의 체육복에는 CU의 로고가 번듯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처음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는 CU의 유니폼을 입고 운동을 한답니다. ‘CU를 홍보하기 위해서’라는데요. 그 말에서 CU에 대한 짙은 애정이 느껴집니다.
“CU 유니폼을 입으면 사람들이 저를 CU와 동일시하게 되잖아요. 여기서는 내가 CU를 대표하는 사람이니까, 저도 더 상냥해지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신중해지죠.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요.”
인터뷰에 답하면서도 박 점주님은 주섬주섬 백팩에서 무언가를 꺼내 체육관 한 켠에 늘어놓습니다. 다름아닌 CU의 대표 스낵들입니다. 동호회 활동 날이면 이렇게 CU의 스낵시리즈를 꼭 가져온다고 합니다. CU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맛난 스낵을 홍보하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정작 점주님은 가져온 스낵을 쉬이 시식할 수 없습니다. 20년 전 발병한 경구개암과 이후 항암치료 탓에 목소리도 내기 어렵습니다. 부드러운 유동식으로만 식사를 한 지 20년째인 데다, 목소리에 바람 소리가 섞여 의사소통도 부자연스럽습니다.
“사실 동호회에 처음 나왔을 때에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도 잘 걸지 못했어요. 하지만 CU 유니폼을 입고 운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먼저 말을 거는 회원들이 있었죠. 덕분에 제가 파주시에서 CU를 운영한다고 소개하면서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웃음)”
CU 유니폼을 한 차례 점검한 그가 드디어 쭈욱 스트레칭을 하고 경기장을 바라봅니다. 지금 하려는 운동은 바로 ‘피클볼’, 네트를 사이에 두고 공이 오가는 간단한 스포츠입니다. 멀리서는 테니스나 배드민턴 동호회로 오인할 수도 있는데요. 박병준 점주님은 ‘그보다 훨씬 쉽고 재미있는 스포츠’라고 말합니다. 그의 건강도 몇 년째 피클볼이 지켜주고 있답니다.
지금 핫한 구기종목, 매력만점 피클볼
테니스와 비슷한 형식의 스포츠인 피클볼은 미국 어린이들이 자기 집 뒷마당에서 손쉽게 즐기도록 고안한 운동입니다. 코트 사이즈가 테니스보다 작고, 실내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라켓과 공이 매우 가벼워서 어린이나 어르신분들도 쉽게 즐길 수 있고요. 미국은 물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피클볼의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인데요. 탁구나 배드민턴을 쳐본 적 있다면 초심자도 배우기가 어렵지 않아 중장년층을 필두로 확산되는 중입니다. 파주 피클볼 동호회 역시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포진해 있는데요. 여기서도 그는 최고참 선배에 속합니다.
“원래 탁구를 쳤어요. 그것도 참 좋아하고 잘 쳤지요. 어느 날 지인이 피클볼을 추천해서 올해 2월부터 이렇게 동호회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탁구와는 비교도 안 되게 더 재밌더라고요.”
스포츠의 재미도 재미지만, 이렇게 피클볼에 푹 빠지게 된 데에는 동호회원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낯선 사람들과는 대화하기 꺼려하던 그에게 살가운 동호회원들이 다가와 함께 소통했기 때문이죠.
갑자기 들이닥친 고난, 그 어둠을 밝혀준 CU
20년 전, 박병준 점주님은 입천장에 발병하는 경구개암 3기를 진단받고 목숨을 건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턱부터 목까지 절제해 종양을 제거했고, 항암치료도 오래 받았습니다. 병은 겨우 물리칠 수 있었지만 대가가 따랐습니다. 수술 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고, 두부나 계란 등 부드러운 음식만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의 나이 60대의 일이었습니다. 군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뒤 인생 2회차를 설계하던 그때, 갑작스럽게 발견된 암으로 삶을 아예 리셋해야 했습니다. 이전에는 술과 담배를 매일같이 즐기고, 운동도 따로 하지 않았답니다. ‘건강만큼은 타고났다’고 자부하면서 그 소중함을 모르고 젊은 시절을 낭비했던 것이 뒤늦게 큰 후회로 남았습니다. 은퇴한 이후 사랑하는 가족과 여행도 자주 다니고 새로운 일도 시작하려 했던 때 들이닥친 병마는 그의 삶을 통째로 삼키려 했습니다. 그때 그가 잡은 것이 바로 CU였죠.
“은퇴 후에도 무조건 일을 하려고 했어요. 근데 내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어려우니 어디 취직은 할 수 없고, 내 가게를 할 수밖에 없잖아요. 퇴원 후 1년도 안 돼서 편의점을 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잘한 일이에요. 바로 CU를 하지 않았더라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수술하고 20년이 지났으니 현재의 삶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낯선 사람과 말을 하는 일은 편치 않습니다. 발음이 부정확하니 상대가 잘 알아듣지 못할까 걱정도 되고, 어떤 때는 괜한 자격지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수술 후 회복 시기를 떠올리며 건강한 오늘이 감사하단 생각을 합니다.
“나는 쉬면 몸이 아파요. 한창 일하다가 은퇴하고 좀 편해지니까 바로 큰 병에 걸렸던 것도 그렇고요. 쉬면 뭐 해요. 일을 해야 사람이 안 늙고 건강해요. 매일 7시에 출근해서 5시까지 편의점에서 일하는데, 이렇게 15년째 하고 있어요. 자식들은 아버지 이제 그만 은퇴하라고 그러죠. 그때마다 제가 그래요. 아빠는 쉬면 몸이 아프다고요.”
CU에서 한 번, 피클볼로 두 번 채우는 활력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데 손님 대하는 일을 하니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술에 취한 손님에게 욕설을 듣고 울분을 참아야 하는 날도 있었고요. 새 삶을 시작하려는 의지는 충천했지만, 절망을 극복하는 데에는 사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죽다 살아났죠. 나도 고생, 아내도 고생이 많았어요. 그때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뛰어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지요. 완치한 후에는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탁구나 배드민턴 등 운동을 찾아 다니면서 했어요. 내 몸을 내가 챙기지 않으면 가족이 힘들잖아요.”
수술 자국이 크게 남은 목 부분을 보여주며 ‘여기를 다 들어냈다’며 허허 웃는 박 점주님. 지금은 환히 웃고 있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감히 짐작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긍정적인 그의 웃음은 마치 피클볼처럼 가볍고 청량합니다.
“피클볼 동호회에 와서 내가 참 말이 많아졌어요. 말도 자주 해야 발음이 정확해지고 소리를 조금이라도 낼 수 있게 되는데, 예전에는 남들이 흉볼까봐 입 다물고 살았거든요. 손님이 물건 어디 있냐 물어도 말로 알려줄 수 없으니 직접 가서 찾아주고 그랬어요. 피클볼 시작하면서 건강도 좋아지고, 사람들과도 자주 얘기하다 보니 말도 잘하게 됐죠. 아내도 내가 많이 밝아졌다 그래요.”
달라진 일상, 달라질 인생!
피클볼이라는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찾은 후 그의 일상도 달라졌습니다. 일주일에 나흘은 퇴근한 다음 무조건 체육관으로 옵니다. 힘주어 라켓에 공을 맞추고, 동호회원들과 회의하며 향후 파주 피클볼 협회를 만들 꿈도 꾸고 있습니다.
“작년에 우리 동호회원 중 여러 명이 팀을 꾸려서 전국대회에 나갔어요. 거기서 우승을 했죠. 아직 파주시에는 피클볼 협회가 없거든요. 이왕 시작했으니 사람들과 의기투합해 협회도 만들고, 활동도 더 열심히 해서 피클볼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올해에도 우리 팀이 전국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니, CU에서 유니폼이나 음료 등으로 응원해주면 더 힘이 날 것 같아요. (웃음) 늘 그랬듯 저 역시 더 열심히 CU를 홍보할 테니까요.”
꾸준한 노력 덕분인지, ‘병준님’ ‘병준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다른 동호회원들은 그의 성실한 모습에 CU를 향한 호감이 깊어졌다고 합니다. 한 점포를 운영하는 주인이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을 보면 좋은 회사 아니겠느냐며 너털웃음도 짓습니다. 이에 박 점주님 역시, ‘피클볼 동호회원들이 따뜻하게 배려해준 덕분’이라며 화답하고요.
병마를 이겨내고 피클볼로 건강과 활기를 찾은 박병준 점주님. 그의 말처럼, 그가 새 인생의 기쁨을 깨달은 건 분명 다사로운 회원들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애초에 스스로 양지를 찾아 나오려는 스스로의 의지에 더한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경쾌하게 날아가며 사람들과 ‘티키타카’ 하는 피클볼처럼, 그의 삶 역시 그늘 한 점 없이 밝은 2막을 맞이하길 기대합니다.
글. 김송희
편집. 성지선
사진.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