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WORK] 내일을 향해 쏴라

매거진 2023.10.26

 

 

널따란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니 일순간 하나가 휘익, 창공을 시원하게 찢으며 날아갑니다. 길고 팽팽한 심호흡 끝에 활이 놓이는 순간 스트레스도 멀리 날아간다는 박효운 점주, 예리하고 단단한 눈빛의 그에게 국궁의 매력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추수가 끝나 다소 황량한 풍경 속, 좁다란 길을 따라 한참 걸어갑니다. 이윽고 다다른 곳은 웬 벌판인데요. 그물망으로 분리한 공간 속을 자세히 살펴보니 각각 커다란 나무 과녁이 하나씩 세워져 있습니다. 오호라, 그러고 보니 저 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활을 정비하네요.

전래동화의 어느 용맹한 장수가 갓 튀어나온 듯, 건장한 체격과 맑은 눈빛이 인상적인 점주(CU 원성센터점)의 취미는 다름아닌 국궁입니다. 여유가 날 적이면 아산의 활터 ‘배방정’에 들러 활시위를 당기곤 하는데요. 양궁이 한국의 전통 활쏘기에서 기술과 채점을 현대화시킨 것이라면 국궁은 여전히 전통 무예시절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활터에서 145m 거리의 거대한 과녁만 맞추면 되고, 채점 방식도 단순한 편이지요. 광활한 활터에 서서 심호흡을 할 때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박효운 점주, 편의점에서와는 또 다른 그의 이색 면모에 주목해봅니다.

 

 



 


움직이면 힘이 생겨요

처음 활을 만져본 건 26살 때였어요. 수원에 놀러 갔다가 다른 사람들이 활 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멋있다’는 생각에 잠깐 배웠었지요. 군대를 다녀오고 일을 하면서 잠시 활을 잊고 살다가 다시 시작했어요.

전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취미도 다양하죠. 프리 다이빙도 10년 넘도록 즐기고 있고, 국궁은 다시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네요. 아무리 바빠도, 잠을 줄여서라도 취미 활동을 하러 가요.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지만 활동적인 취미가 필요했거든요. 국궁은 프리 다이빙처럼 몸을 많이 쓰는 운동은 아니지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져요. 눈 건강에도 좋은 것 같고요.

 

겉치레 없는 전통 국궁

국궁의 매력은 한 마디로, ‘허례허식이 없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죠. (웃음) 또 의외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취미이기도 해요. 활만 있으면 되거든요. 우리나라 각 지역마다 대한국궁협회에서 운영하는 활터가 있어서, 저는 국내 여행을 갈 때 활터부터 찾아보곤 해요. 이용비도 월 2만 원 정도로 저렴하니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죠. 활과 화살 이외에 다른 장비도 필요 없어요. 잘 닳는 장비가 아니기에 초반에 한 번 구입하면 오랜 기간 쓰기도 하고요. 생활 체육인으로 등록하면 지역대회를 거쳐 전국대회에 출전할 수도 있답니다.

 

 


 

오시오중, 다섯 개의 활

국궁은 한 번 과녁 앞에 섰을 때 화살을 다섯 번 쏠 수 있습니다. 몇 개를 맞히느냐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죠. 잘 쏘시는 분들은 15개 중 15발을 맞히기도 한답니다. 다섯 개 쏴서 다섯 개를 다 맞히면 ‘접장’이 됩니다. 사실 오래 쏘신 분들은 웬만하면 다 그렇게 맞히세요. 신입 회원이 오면 접장님들이 자세나 방법을 알려주시곤 하죠.

국궁의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기존 회원 분들이 신입 회원을 아주 반긴다는 거예요. 활터마다 오래 다니신 접장님들이 아주 많으신데요. 무슨 사극에 나오는 무관들처럼 활을 정말 잘 쏘시거든요. 그런 베테랑 분들이 새로운 신입이나 젊은 회원들이 오면 아주 반가워하시면서 친절하게 알려주시니 영광이죠. 저는 이곳 배방정에 처음 왔을 때 자세 좋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아마도 과거에 잠깐 해봐서 그런가 봐요. 지금은 아내 자세가 더 좋지만요. (웃음) 제가 국궁에 재미를 느끼고 자주 가면서 아내도 함께 활 쏘기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저보다 더 잘 합니다.

 

 


 

취미 부자가 된 이유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어려운 편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검도, 태권도 학원 다니는 걸 정말 부러워했던 기억이 나요. 일 년에 치킨을 딱 한 번 먹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으니 미술, 체육 관련 학원은 꿈도 못 꿨죠. 어른이 되어 여유가 좀 생기니까 취미를 배우는 데 아끼지 않게 됐어요. 수영도 4~5년 즐겼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흠뻑 빠져 쌍절곤을 배운 적도 있고요. 탁구, 캘리그래피 등 배우고 싶은 건 가리지 않고 열심히 배웠어요. 지금은 프리 다이빙과 국궁에 집중하고 있지만, 또 흥미로운 취미가 생긴다면 열심히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잡념이 사라지는 순간

CU를 운영하기 전에는 건설 현장에서 일했어요. 어깨를 다쳐서 수술을 하고 그만둬야 했죠. 과거에 몸을 주로 썼기에 신체적으로 고단했다면, 편의점 일은 몸이 덜 힘들어도 심리적으로는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자영업이다 보니 신경도 많이 써야 하고요. 사람 대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국궁을 하러 오면 그 순간부터 평소의 스트레스나 잡념이 저 멀리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화살이 시위를 떠나는 걸 ‘발시’라고 하는데, 화살을 떠나보낼 때에는 눈앞에 과녁과 화살촉밖에 안 보입니다. 그때 그 순간, 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거죠.

 

 


 

국궁이 내게 준 것

편의점은 사방이 아주 밝잖아요. 하루에 12시간 근무하면서 계속 포스 화면을 봐야 하고요. 그러다 보니 시력이 좀 나빠졌어요. 활터들은 보통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거든요. 여기에 오면 주변에 높은 건물도 없고, 저 멀리 보이는 건 산의 윤곽뿐이에요. 멀리 보고 허리를 펴서 활을 쏘다 보니 자세도 시력도 많이 좋아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궁도에 이런 말이 있어요. ‘발이부중 반구저기(發而不中 反求諸己)’이다. ‘내가 활이 빗나가면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나의 이라는 뜻이에요. 활을 쐈을 때에는 다른 이를 탓하지 말고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말이죠. 저는 말이 좋더라고요. 살다 보면 어떤 결과라도 하기 나름이고, 탓을 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봐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잖아요. 국궁을 하면서,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그러니까 삶을 살면서 항상 말을 되새겨요. 글을 보시는 분들 마음이 복잡하다면 이번 주말부터 활을 잡아 보세요. 분명히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우게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