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주님은 하루 대부분을 일터인 편의점에서 보냅니다. 자연스레 일과 일상을 분리하기 어렵죠. 손님 응대와 발주, 제품 진열과 유통기한 체크 등 긴 근무시간에도 쉴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바쁜 와중에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점주님이 있습니다. 평소에도 게임을 즐기는 CU장위하트점 배경우 점주님 이야기인데요. 틈틈이 개발자로 변신하는, 흥미 만점 ‘부캐’ 생활을 들여다봅니다.
공대생도, 개발자 출신도 아닙니다. 하지만 노트북을 열면 배경우 점주의 표정은 프로개발자 못지않게 진지해지죠. 그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편의점 스태프가 주인공인 게임을 개발했는데요. CU 장위하트점 운영을 맡아 겪었던 일,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게임 속 세계를 구축하고 주인공이 퀘스트를 깨는 과정을 설계했습니다. 그저 컴퓨터를 좋아해서 프로그램을 독학하고 남는 시간 틈틈이 게임을 만들었다죠. 재미있고 신기한 그의 게임 개발 스토리를 들어봤습니다.
메타버스 게임 ‘더 샌드박스’
‘더 샌드박스’라는 게임을 아시나요? 메타버스 게임의 일종인데요. 이곳에는 우선 대륙을 상징하는 ‘월드’가 있고, 자신 소유의 땅인 ‘랜드’가 존재합니다. 자신의 랜드 안에서 마치 모래성을 쌓듯 나만의 창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일반인들도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거죠. 또 그 게임을 심사받을 수도 있고요. 처음엔 게임을 즐기기만 했는데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만든 게임
제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시간이 기니까 자연스럽게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게임을 구상했어요. 일단 게임이기 때문에 미션을 설정해야 하잖아요. 그 미션을 편의점에서 생기는 사건들로 설정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당이 떨어진 노인을 구하는 퀘스트도 만들고, 편의점에서 빌런(주취자나 변태)을 물리치는 퀘스트, 여성 손님을 보호하고 빌런으로부터 지켜내는 퀘스트, 점포에 침입한 도둑을 잡는 퀘스트 등 10년 넘게 편의점 운영을 하면서 겪은 일을 종합해 내용을 만들었죠.
마음이 이끄는 곳
저는 코딩이나 개발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저 어릴 적부터 기계를 다루는 걸 좋아했을 뿐이죠. 편의점을 운영하기 전에는 슈퍼마켓을 운영했는데요. 늘 바쁘면서도 시간이 날 때 영상 편집도 배우고 웹페이지 개발도 배웠어요. 예전엔 어플을 제작해 앱스토어에 올렸던 적도 있고요.
컴퓨터는 배울수록, 파고들수록 재밌어요. 그 중에서도 게임은 흥미로운 분야죠. 언젠가 내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는데 드디어 이루게 됐네요.
게임 개발의 시작
2년 전 가상화폐 공부를 하다가 샌드박스라는 게임을 알게 됐어요. 즐기다 보니 꼭 대단한 자본을 갖추지 않아도, 게임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어도 게임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혹시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게임도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없었어요. 단번에 ‘이건 나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손님 입장이 아니라 근무하는 사람 입장에서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예전처럼 전문 기업만이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시간의 틈
편의점 업무의 장점이기도 한데요, 여유가 생길 때면 점포를 지키면서도 노트북으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어요. 슈퍼마켓을 운영할 땐 직접 사입까지 해야 해서 취미 생활을 할 틈이 없었죠. 하지만 편의점 일이 손에 익으면서 중간에 제 시간이 생겼습니다. 점포를 운영하면서 제 공간도 가질 수 있고, 취미 생활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일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종일 점포를 지키고 있는데 이 시간을 지겹다 생각하면 힘들잖아요. 비는 시간에 계속 제가 좋아하는 일을 만들고 더 즐겁게 일해야죠.
편의점 게임인 이유
물론 시중에는 판타지 등 미래 세계를 바탕으로 한 게임도 많아요. 하지만 저는 제가 사는 현실에서 이뤄지는 이야기가 더 재밌어요. 일하면서 매장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소재로 삼으면 일단 공감이 가거든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도 있고요. 일례로 예전에 어르신이 쓰러져 계신 것을 보고 ‘당이 떨어지셨구나’ 싶어 얼른 오렌지주스를 사다드린 적이 있어요. 이런 에피소드들을 깨알같이 게임 일부로 삼았습니다.
나의 일터
CU장위하트점은 동네 손님이 많은 지점이에요. 그래서 타 점포에서 보기 힘든 청과도 소규모로 판매하고 있죠. 가파른 곳에 위치한 유일한 편의점이라 동네 주민들에게 아주 소중한 지점입니다. 단골 고객도 많고, 바로 앞이 중학교라 학생 고객도 많아요. 때로는 졸업한 학생이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죠. 중학생이던 아이가 어느덧 어른이 되어 여자친구 손을 잡고 와서는 “아직도 계시네요”한 적도 있어요. ‘내가 장사를 너무 오래 했구나’ 싶기도 하지만(웃음)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더 커요. 오래 자리를 지키다 보니 그런 일이 종종 있거든요. 오랜만에 옛 동네에 놀러왔다가 같은 자리에, 같은 점포가 있는 걸 보면 아주 반가워합니다. 요즘은 뭐든지 다 쉽게 자취를 감추잖아요. 그래서인지 중학교 때 봤던 아저씨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참 좋은가 봅니다.
도전과 변화
게임을 만든 후에 자신감이 붙었어요. ‘내가 할 수 있을까’ 했는데 해보니까 되더라고요. 그러니 업무도 더 즐겁게 느껴져요. 편의점 업무의 특성상 취미 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 일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편의점은 24시간 불을 켜고 있지만, 편의점 업무만 24시간 고민하기는 힘들어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요. 자기효능감을 높여줄 수 있는 취미를 찾으면 자신감도 생기고 일에도 활력이 돌죠.
나의 꿈
저는 게임을 개발했지만 캐릭터를 만드는 사람도 따로 있어요. 언젠가 그들과 협업을 해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큰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그걸로 수익도 낼 수 있으면 좋겠죠. 게임 완성도를 더 높이고 싶기도 하고요. 우선 현재로서는 점포 인근의 동대문 약령시장을 바탕으로 한 게임을 만들어 보려 해요. 약령시장을 홍보하기 위한 게임인데, 한약재를 아이템으로 삼아 뭘 해볼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저는 거의 평생 점포를 운영해온 사람이니 다른 목표는 없어요. 건강 관리만 잘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게임도 만들고, 무엇보다 CU를 잘 운영해야죠. 다른 점주님들께서도 숨어 있는 흥미를 찾아보세요. 편의점이 더 즐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