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Y] ‘CU구마’의 본산, 고창 해들녘에 가다

매거진 2024.12.26

 

껴입은 패딩 속으로 속속들이 스며드는 냉기, 달린 신발을 신어도 꽁꽁 시린 . 강이며 땅까지 얼어붙는 겨울은 분명 매서운 계절입니다. 하지만 겨울이 유독 기다려지는 이유가 있죠. 코끝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구수한 군것질의 내음! 바야흐로 지금은 군고구마의 계절입니다.

 


 


 

겨울 간식 1위, 그 주인공은?

겨울은 누가 뭐래도 군것질이 유독 당기는 시기입니다. 펑펑 내리는 창밖의 눈 바라보면서 이불 속에 폭 들어앉아 귤 까먹고, 호빵 쪄 먹고, 알밤 삶아 먹고, 딸기 씻어 먹다 보면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죠. 길거리 간식도 이맘때면 성황을 이룹니다. 꼬리까지 꽉 찬 붕어빵, 속까지 데워주는 어묵국물에 요새는 탕후루까지 겨울 간식으로 각광받죠.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간식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언제나 1위를 차지하는 스테디셀러가 있습니다. 바로 구황작물을 대표하는 ‘고구마’입니다. 네, 겨울철 CU를 들어서면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로 다짜고짜 발길을 끌어당기는 그 고구마 말이죠.

과거에는 이 간식의 제왕을 맛보려면 일단 ‘군고구마 아저씨’를 찾으러 추위를 불사하며 골목을 헤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죠. 언제 어디서든 CU를 찾으면 크고 맛좋은 ‘CU구마’가 노릇노릇 익어 있으니까요. 사장님께서 손 가는 대로 담아 주시던 군고구마와 달리 균일한 크기, 보장된 맛, 속까지 노오랗게 익은 완벽한 비주얼까지. 편의점 고구마 중에서도 CU의 ‘꿀고구마’가 크기와 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CU구마를 맛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잘 잊지 못합니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단맛도 맛이지만, 주먹을 훌쩍 넘는 크기와 맥반석에 구운 특유의 향까지 놓칠 수가 없거든요. 간혹 어느 농장의 고구마인지 문의하는 고객들도 있는데요. “집에서도 원 없이 먹으려 한다”고 하십니다. 이쯤 되면 문득 궁금해집니다. 전국에 위치한 CU 점포에서 어떻게 이렇듯 똑같이 맛있는 고구마를 판매할 수 있는 걸까요? 그 정답을 파헤치기 위해 BGF LIVE가 직접 고창에 다녀왔습니다. CU구마의 비밀스러운 고향 말이죠.

 

 

 

 


 

전국 모든 CU구마, 이곳에서 출발!

전국 CU 점포에서 판매하는 CU구마의 전체 수량은 현재 3개 협력사에서 납품 중이며, 이중 해들녘고창황토배기 청정고구마연합 영농조합법인에서는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고구마를 일 년 내내 모자람 없이 전국 점포에 공급할 수 있는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고창의 절반을 차지하는, 무려 150만 평에 달하는 땅에서 매해 1만5천 톤의 어마어마한 양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들녘은 일 년 동안 고창의 농가들과 협업해 영농조합법인으로 고구마를 재배하고, 고구마유통센터와 가공공장까지 운영해 고구마말랭이, 고구마페이스트, 고구마스틱 등 고구마 2차가공 식품까지 제조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를 더 알려드리자면, CU의 PB 상품 ‘득템 시리즈’의 ‘고구마말랭이 득템’ 상품 역시 이곳에서 제조하고 있답니다.

 

 

 

 

CU구마가 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

땅에서 쑥쑥 몸집을 키우던 고구마는 보통 9월 하순부터 10월 중하순경, 서리 내리기 전에 수확합니다. BGF LIVE가 방문한 12월은 수확을 마친 고구마를 공장에서 가공하는 데 한창이었죠. 일단 고구마를 크기별로 선별하고 깨끗이 세척해 박스에 담아 유통사별로 나누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CU에 공급되는 고구마는 박스당 10개씩 포장되는데요. 특히 CU구마들은 크기(g)가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사이즈가 제각각일 경우 균일가로 판매하기 어려운 까닭이죠. 200~340g의, 점포에서 관리하기도 수월하고 고객이 먹기도 좋은 ‘긴중대’ 사이의 고구마만 CU 박스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사이즈 차이가 크면 점포와 고객 모두 민감할 수 있기에 먹기 좋은 사이즈를 고르는 작업이 바로 지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공정을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밭에서 나온, 아직 흙이 고대로 묻어 있는 꿀고구마를 우선 고창의 지하수로 깨끗이 세척합니다. 이 원물을 열풍 건조한 뒤, 중량과 모양에 따라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류하죠. 기계를 이용하면 껍질이 손상되기에 모두 사람의 손으로 분류해야 합니다. 껍질이 손상되면 상품가치도 떨어지지만 무엇보다 맛이 변질되니까요.

고구마를 잘못 골라 인상 찌푸린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거예요. 섬유질이 너무 질기거나 오래된 건 쓴맛이 나기까지 하죠. 하지만 CU에서만큼은 이런 일이 없습니다. 고구마 재배부터 수확, 유통과 가공 모든 과정이 효율보다는 맛에 집중이 되어 있거든요.

 


 

고창의 토질은 비옥한 황토입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비해 고구마 농사를 짓기에 좋을 뿐 아니라 강수량도 균일한 편이죠. 고구마 키우기에 최적의 환경인 만큼 생산량을 늘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에 30년 동안 고구마 농사만 지어온 해들녘의 서재필 대표는 자신의 노하우를 과감히 주변 농가들에게도 공개했습니다. 다같이 균일한 품질의 고구마를 재배해 상생하자는 제안이었죠. 농가들 역시 그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렇게 대규모의 영농조합법인이 꾸려질 수 있었습니다. 백이면 백 맛좋은 고구마를 생산할 수 있었던 건 물론이고요.

 

“고창 고구마가 맛있는 이유를 딱 한 가지 꼽으라면 뭐니뭐니 해도 재배 기간입니다. 고구마는 땅에서 150일 이상은 자라야 맛이 영그는데요. 해들녘은 재배 시에 다른 지역 농가들보다 15일가량 빨리, 그러니까 3월 중순에 식재를 시작합니다. 고구마가 땅에서 180일 이상 자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거죠. 이 일정을 맞추려면 냉해 방지 시설인 이중 터널을 토지 위에 설치해야 하는데요. 힘들고 번거롭긴 하지만 이 ‘15일’의 차이가 맛에 큰 영향을 줍니다.”

 

 

 

 

 

 

정직하고 우직한 방법이 질 좋은 고구마를 만든다

평생 고구마 농사만 지어온 농사꾼 서재필 대표는 고구마라면 눈을 감고도 재배하는 전문가입니다. 농사를 넘어 이제는 공장을 짓고 영농조합까지 운영하고 있죠. 이 모든 일은 그가 갖고 있는, 고구마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CU구마 맛의 원천을 묻자 과연 답변도 농사꾼답게 시원하고 정답습니다.

 

“작물은 다 똑같아요. 필요한 영양성분을 고르게 섭취해야 하죠. 농사를 잘 하려면 땅의 질소 함량도 적당해야 하고, 규산처럼 좋은 영양분도 있어야 해요. 자랄수록 고구마 몸집은 커지는데 영양소를 채우지 못하면 당이 떨어지니 자연히 맛도 그만하질 못하죠. 곰곰이 생각해봐도 특별한 노하우는 없습니다. 속도나 효율보다는 제대로 과정을 지켜가면서 정직하게 재배하면 맛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저는 농사 지을 때 작물한테 가서 물어봐요. 찬찬히 살펴보면 그때 뭐가 필요한 지 저절로 보입니다. 자식 돌보는 마음으로 밭에 가서 물어보면 애들이 답변을 줘요.”

 


 

해들녘의 고구마는 무농약재배법으로 자라납니다. 다만 토질을 유지하기 위해 고구마 수확이 끝나면 땅을 완전히 뒤엎는 과정을 거치죠. 토양 검사를 한 다음 부족한 원소가 있다면 천연 비료 작업을 거쳐 다시 비옥한 토양을 일굽니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 ‘땅의 상태’부터 철저하게 점검하는 것이 해들녘의 비결이라면 비결인데요. 수확한 뒤에도 관리는 계속됩니다. 일 년 내내 CU에 고구마를 공급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처로서, 창고로 고구마를 옮긴 뒤 저장 온도와 습도를 지켜가며 맛이 든든히 여물 때까지 숙성 보관한답니다.

 

이렇게 하루에 전국 CU 점포로 공급되는 고구마 물량은 평균 2,500박스 정도. 하루에 7~8톤의 고구마가 전국 각지로 배송되는데요. 2020년 해들녘이 CU에 황토꿀고구마를 공급하기 시작한 이래로 그 수량이 매년 20%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겨울에만 CU구마를 판매하는 점주님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사계절 내내 고구마를 파는 점포도 늘어났습니다.

 

 

 

 

 

해들녘 사전에 불량 고구마는 없다

선별 과정에서 누락된, 이른바 ‘불합격’ 고구마는 어떻게 될까요? 크기가 다소 작거나 작업 과정에서 스크래치가 나는 바람에 CU구마로 출하하기는 힘들지만 맛은 그대로인 B급 고구마는 전체 생산량의 30% 정도입니다.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서재필 대표는 가까운 거리에 가공공장을 차려 다양한 고구마 가공식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고구마말랭이 득템 상품도 이 가공공장에서 만들어지죠.

고창 땅에서 재배한 고구마를 주재료로 한 고구마 가공식품은 그 맛이 외국산 원물을 쓰는 타사 제품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수확한 산지에서 세척 및 선별을 마치면 바로 가공공장으로 가져가니까요. 뜨겁게 찐 뒤에 껍질을 벗기고 모양을 내어 고구마말랭이를 만드는 일련의 작업을 보니 여간 까다롭지가 않습니다. 찌기 전 고구마를 깎으면 더 편하겠지만, 껍질을 깎는 순간 맛이 떨어지기에 일단 찐 후에 뜨거운 상태에서 껍질을 벗긴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구마 재배부터 가공의 전 과정은 딱 한 가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꿀고구마를 맛있게 제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고민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CU구마뿐 아니라 고구마말랭이 득템 상품에서도 달달하고 쫀득한 맛은 여전합니다. 고구마 외의 첨가식품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포장된 상태에서도 한 번 더 살균처리를 거쳐 마지막까지 신중을 기합니다.

 

“소비자의 재구매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저는 제가 장사꾼이 아닌 농사꾼이라 여기면서 살았는데, 농사꾼도 소비자가 중요해요. 소비자가 다시 찾지 않는 농산물은 농사꾼이 아무리 열심히 키우고 내놓아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고구마를 먹어본 소비자가 “와 맛있다” 인정해 주시고, 또 찾을 수 있도록 해야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변하지 않는 품질이 중요한 거고요.”

 

 

 

 

 

올 겨울 가장 맛있는 위로

마지막으로 서재필 대표에게 ‘CU구마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냥 드셔도 맛있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고구마가 제일 맛있는 계절은 12월 말부터 1월까지입니다. 농산물은 소비 기한도 중요한데요. 1월 정도면 숙성이 되어서 꿀고구마의 달콤함이 더 진해진답니다. 원래도 맛있지만 더 맛있어진다고 봐야죠.”

 

앗, 그러고 보니 일 년 가운데 고구마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네요. 한겨울 칼바람을 헤치고 오늘 CU로 들어가 보세요. 뜨거운 맥반석 기기 위에서 오랫동안 뭉근하게 익어 달콤해진 군고구마 하나가, 구수하고 따뜻하게 추위를 녹여줄 테니까요.

 

 

 

 

인터뷰. 서재필 대표(해들녘 고창황토배기청정고구마연합 영농조합법인)

글. 김송희

편집. 성지선

사진.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