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 DIARY] BGF리테일 버스커 서지수 주임

매거진 2024.10.10

 

누구에게나 지치는 날은 있습니다. 내 자신이 왠지 부족하게 느껴지는 날, 일도 사람도 내맘 같지 않은 그런 날. 그럴 때 서지수 주임은 마이크를 잡습니다. 때로는 연습실에서 홀로, 하지만 보통은 거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만히 선율에 목소리를 맡깁니다. BGF리테일의 각종 행사는 물론 주말에도 버스킹 무대에 서는 BGF리테일의 ‘버스커 버스커’ 그녀를 만났습니다.

 


 


 

감춰왔던 꿈, 날개를 펴다

한 자락 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문득 들려오는 아름다운 노래.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 둘 멈추고, 어느 순간 거리에는 작은 무대가 만들어집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또 누군가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집중하기도 하죠. 이 순간이 그들에게는 잊지 못할 낭만이자 기억으로 새겨질 테고요. 예전부터 제 버킷리스트에는 ‘버스킹’ 세 단어가 늘 들어가 있었습니다. TV 프로그램 <비긴 어게인>을 보면서 그 열망도 점점 커져갔죠. ‘나도 내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항상 꿈꿔왔어요.

작년 SC 업무를 하면서 보람도 있었지만 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어느 날 ‘나 왜 이렇게 힘들게만 살고 있지? 내가 정말 재미있게 느끼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돌파구가 간절하게 필요하던 그때 번뜩 ‘버스킹’이 떠올랐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생각난 김에 바로 검색해 보니 ‘버스킹 동호회 카페’를 찾을 수 있었어요. 제 ‘버스킹 라이프’의 시작이었습니다.

 

 

 

 

마이크를 잡으면 다른 자아가 된다

사실 저는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MBTI도 ISFP인데, ‘I 중에서도 극 I’라고 스스로 소개할 만큼 낯도 많이 가리죠. 그런데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많은 관중 앞에서도 전혀 떨리지가 않더라고요. 아, 물론 첫 번째 버스킹은 조금 떨리긴 했어요. (웃음) 노래를 마치고 난 뒤 마이크를 쥔 손이 덜덜 떨리더라고요. 노래를 부를 때에는 전혀 몰랐는데 말이죠. 아무튼 첫 버스킹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에는 전혀 떨지 않고 오히려 무대를 즐기고 있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에는 서지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는 느낌입니다. <지킬 앤 하이드>처럼 바뀌고 싶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고요. (웃음) 동호회 분들은 “눈빛이 돌변하는 것 같다”고들 해주시지만 저 스스로는 반주를 들을 때 오히려 마음이 안정됩니다.

제가 버스킹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한 번은 가까운 회사 동료분들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셨어요. “서 주임, 우리가 자리 만들어 주면 정말 노래 부를 수 있겠어요?”라고요. “아유, 마이크만 있으면 어디서든 부를 수 있어요.” 말씀드렸더니 정말로 지역점주님 행사에서 작은 무대를 만들어 주셨죠. 점주님들 추석 선물세트 알림 홍보 영상에서도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요. 그때 ‘소원을 다 이뤘구나’ 생각했어요. 바쁜 걸음 멈추고 제 노래에 집중해주시는 분들, 또 중요한 행사를 빛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분들 덕에 소박한 제 취미가 큰 영광이 되어 돌아온 것 같아요.

 


 

 

 

 

을왕리 밤바다, 그 조명 아래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며 신기해하는 동료들도 있어요. 이게 평소 연습을 많이 하면 사람들 앞에서 전혀 떨리지 않아요. 부르고 싶은 노래,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집에서 연습을 좀 해본 후에 코인노래방에 가는데요. 같은 곡을 여러 번 불러 보면 음정, 박자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이 곡을 사람들 앞에서 불러도 괜찮겠다’ 하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버스킹 공연은 뭐니뭐니 해도 을왕리에서 했었던 공연이에요. 을왕리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땅거미가 내린 을왕리는 정말 낭만적이거든요. 밤바다를 보러 나온 연인,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취객들이 적당히 자리하고 있고, 작은 불꽃놀이를 하는 분들도 있죠. 을왕리 한복판에서 버스킹을 시작했을 때 ‘밤바다와 알코올이 나를 돕는구나’ 싶었어요. (웃음) 단체 여행 오신 분들이 제 노래를 들으면서 호응해 주셨고, 어떤 분들은 휴대폰 라이트를 켠 채 좌우로 손을 흔들며 음악에 맞춰 춤도 추셨어요.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하나 됐죠. 눈앞에서 꽤 많은 관객이 조명을 켜고 팔을 흔들며 부드럽게 리듬을 타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나요.

노래가 끝난 뒤 관객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시면 시작할 때보다 더 가슴이 두근거려요. ‘내 노래가 그래도 누군가에게 가 닿았구나’ 싶어서요. 가끔은 “노래를 더 듣고 싶은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알려달라”고 다가오는 분도 계세요. 아직 제 채널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아서 “언젠가 또 뵙겠습니다” 하고 인사드리는데,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싶습니다.

 

 

(좌) 2024년 F/W 점주행사 특별무대에 선 모습. 갈고 닦은 기량을 사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우) 2023년 12월 30일 버스킹 동호회에서 마련한 공연 모습. 버스킹이 아닌 무대 공연도 정말 귀한 자산이자 경험이다.

 

 

작년 여름 청계천에서 펼쳤던 버스킹 공연 영상. 볼빨간사춘기의  ‘나만 봄’ 외 여러 곡을 불렀다.

 

 

 

 

어떤 곡도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올해 연말에는 큰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8월부터는 주에 5시간 이상 연습에 매진하는 중이에요. 비투비의 <Higher>, 노을의 <늦은 밤 너의 집 앞 골목길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이렇게 세 곡을 부를 예정인데요. 듣기만 해도 신이 나는 노래들이라 저 역시 음정과 박자를 신경 쓰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맹렬히 연습하고 있어요. 

제 공연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주로 해외밴드 ‘오아시스’를 비롯해 남성 뮤지션의 노래를 많이 부릅니다. 평소에는 목소리가 별로 낮지 않은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남성 음역대도 편하게 부를 수 있을 만큼 낮아져서 뭔가 저만의 음색이 만들어지는 것 같거든요. 몸집이 그다지 크지 않고 말소리도 조용한 편인 제가 다소 낮은 음역대로 남성 뮤지션, 그것도 밴드 노래를 부르면 신기해하는 관객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이런 ‘반전’을 좋아하고요.

어느 날인가, 한 무대에서 정말 다양한 뮤지션의 노래를 부른 적이 있어요. 김건모 – 볼빨간사춘기 – 박원 - 다이내믹 듀오 - 앤 마리 순으로요. 그때 한 관객이 “선곡이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그래서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한 가지 노래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되도록 많은 곡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다양하게 부르는 편인데 그 마음을 알아주신 것 같았어요. 아직도 가슴에 깊이 남는 감상평입니다.

 

 

 

 


 

 

 

음악으로 넓어지는 경험들

하도 다양한 노래를 시도하다 보니 ‘가장 자신 있는 곡’을 꼽기란 정말 어려워요. 음… 사실 다 자신 있거든요! (웃음) 최근 유행하는 OTT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의 셰프님들을 보면, 어떤 식재료가 제시되어도 모두들 자신만만하게 임하시잖아요. 저 역시 그렇게 어떤 곡도 자신 있게 소화하는 버스킹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어떤 노래를 신청 받아도 다 부를 수 있는, 그런 가수 말이죠. 그동안 그렇게 해왔다고 자부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아주 예전에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프로그램에도 나가보려 했어요. 용기 내어 지원서도 다운 받고 반쯤 작성하기도 했는데, 막상 방송을 나간다고 생각하니 뭔가 겁이 나서 결국 제출하지도 못했답니다. 그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던 제가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회사 행사에도 나가게 되었으니, 노래가 주는 힘이란 정말 대단합니다. 저의 감정을 다 받아주기도 하고, 또 자신감을 빵빵하게 충전시켜 주기도 하니까요.

나이가 들다 보니(웃음) 자연스럽게 주변 결혼식에 참석할 일도 많아졌어요. 가끔 부탁을 받아 축가도 불러 드렸죠.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무대는 올해 친언니의 결혼식이었어요. 노래 부르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는데, 자꾸 눈물이 차올라서 언니 눈을 보지 않고 부르느라 혼났습니다.

 

 

 

 

노래는 나와 뉴런을 공유하는 사이

노래를 잘 부르려면 계속 듣고 부르는 것이 정도正道예요.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도 항상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퇴근하면 바로 연습실에 가서 불러봅니다. 업무 시간 외에는 음악과 항상 함께 하기 때문에 제 뉴런이 마치 음악과 연결되어 있는 듯해요. 사실 잘 부르건 못 부르건, 힘들고 지칠 때 음악에 빠져들어 마음을 공감 받고 회복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정말이지 저는 음악 없는 삶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버스킹 뮤지션’으로 인터뷰도 하고, 서지수 주임이자 가수로서 노래를 부르는 기회도 가질 수 있는 요즘이 저는 꿈만 같아요. 늘 밝게 웃고 일도 활기차게 하는 서지수 SC이자 멋진 뮤지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일도 노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노력해야겠죠. 저는 호랑이띠라 어디서든 제 가죽을 남기고 싶거든요. (웃음) 끝없는 연습을 통해 직장인으로도 버스킹 뮤지션으로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인터뷰. 서지수 주임(BGF리테일 강서영업5팀)

글. 김송희

사진.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