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학생들과 더 가까이, CU광주소태점 김용훈 점주님

매거진 2024.09.30

 

‘<긴급속보> CU 본사 홍보팀 방송 촬영! 여러분은 지금, 전국 상위 1%의 편의점을 만나고 있습니다!!!’ CU광주소태점에 크게 내걸린 홍보문구에 취재팀마저 폭소가 터집니다. 유머 한가득 장착하고 학생들과 ‘찐친’(진짜 친구)이자 ‘인친’(인스타그램 친구)로 지내며 DM까지 주고받는다는 김용훈 점주, 조금은 특별한 그의 점포 운영기를 들어봅니다.

 


 

 

CU광주소태점 앞에는 화이트보드가 하나 걸려 있습니다. 학교 설명회를 개최하는 날에는 ‘설월여고 자랑거리 100가지’가, 수련회가 있는 날에는 ‘동일 2학년은 수련회 잘 다녀오세요!’ 인사가 적혀 있기도 하죠. 간혹 간식 이벤트를 열어 사다리게임도 합니다. 당첨된 학생들에게는 선물을 준다고요. 그뿐인가요. 상품에는 포스트잇도 붙어 있습니다. ‘○○이가 DM으로 주문함. 찜!’ 빈 박스에도 메모는 어김없이 따라붙죠. ‘늦었어 ㅠ.ㅠ’, ‘끝났어!’ 상품을 못 구했다는 아쉬움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옵니다.

재미있는 점주님 덕에 내부 휴게공간에는 자리마다 포스트잇과 펜이 구비되어 있고, 유리 벽면에는 아이들이 남긴 포스트잇이 빼곡합니다. 점주님이 직접 운영하는 CU광주소태점의 인스타그램에도 점포 이벤트가 게시물로 올라오죠. CU광주소태점 근처에는 고등학교가 두 곳 위치하고 있는데요. 인스타그램도 이들 10대 학생 고객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채널이라고 합니다. 최근 유행하는 간식이나 유행어, 학교의 대소사, 축제나 수련회 일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점주님을 아이들은 친구처럼 생각하고 또 믿을 수 있는 어른이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CU를 광주 10대들의 명소로 만들어가는 김용훈 점주님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휴게공간의 포스트잇을 보고 절로 미소가 떠올랐어요. 언제부터 운영하셨나요?

제가 이곳에서 CU를 연 게 작년 11월부터예요. 점포를 시작할 때부터 근거리에 고등학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사실 이곳은 주변에 상권이라고 할 만한 게 달리 없거든요. 그러니 고등학생들이 CU 고객으로 참 중요하죠. 그런데 데이터를 내보니 학생들 중 20% 정도만 편의점에 오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우리 점포를 더 알릴 수 있을까 하다가 화이트보드와 인스타그램도 시작한 거죠. 학생 고객들을 확대하려고 고안한 아이디어였지만, 지금은 제가 재미있어서 해요.

 

고등학교와 거리가 무척 가까운가 봐요.

네, 근처에 설월여고와 동일미래과학고가 있어요. 둘다 150m, 200m 거리에 있으니까 아주 가깝죠.

 

점포 인스타그램도 있죠. DM으로 예약도 받으시고, 아이들과 댓글로 재미있게 소통하시더라고요.

손글씨에 자신이 있으니까, 이걸로 애들을 좀 격려해주면 어떨까 했어요. 학교 수련회 일정이 잡히면 화이트보드에 ‘수련회 잘 다녀와요~’라고 쓰고, 체육대회 기간에는 ‘이기면 웃음, 져도 웃음’ 써 놓고. 그럼 그 밑에 학생들도 댓글 달듯이 자기들 얘기 적고. (웃음) 그걸 지금은 인스타그램에서도 하고 있어요.

 

 


 

학교 일정 같은 건 어떻게 파악하셨어요?

학교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요. 학교 행사 일정도 보고, 급식표도 확인하고. 석식 메뉴가 맛이 없는 날은 애들이 저녁 먹으러 많이들 와요. 그럼 미리 도시락이나 삼각김밥도 많이 발주하고 닭도 평소보다 많이 튀기죠. 하루는 애들이 너무 많았던 나머지 시식 자리가 부족해서 난간에 앉아 먹은 적도 있더라고요. 너무 짠하고 미안해서, 점주님 찾아오면 선물 준다고 인스타에 올려놨어요.

 

애들이 그거 보고 찾아왔어요?

네, “점주님, 그거 저예요” 하면서 찾아왔길래, 음료수도 주고 그랬죠. (웃음) 그리고 그날로 상품진열대 자리를 빼고 저 추가 시식대를 만들었어요. 우리 친구들 위해서는 상품 진열을 줄이더라도 앉을 자리부터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친한 아이들 이름은 다 외우시는 것 같더라고요.

이제 자주 오는 애들은 뒤통수만 봐도 이름을 알죠. 얼굴도 모두 알고요. 사실 점포 열고 제가 가장 먼저 했던 게 애들 이름 외우는 거였어요. 처음엔 실수도 많이 해서 유경이를 민경이라고 하고 그랬죠. 그러면 애들이 서로 얘기도 하나 봐요. (웃음) 다른 애가 와서 “점주님, 유경이한테 민경이라고 하셨다면서요? 학교에 소문 다 났어요~” 그래요.

 

 


 

 

1976년생이시라고요. 그런데 아이들과 세대 차이가 그리 나는 것 같지 않아요. 친구 같고요.

그런가요? 제가 노력을 많이 해요. 저희 집 두 딸도 고등학생이거든요. 그래서 요즘 어떤 아이돌이 인기이고, 어떤 방송이 유행인지도 얘기하죠. <쇼미더머니> 같은 방송도 딸들이랑 같이 보고 그랬어요. 딸아이가 아이돌 ‘보넥도(보이넥스트도어)’를 좋아하는데, 한번은 제가 화이트보드에 ‘새학기 시작 화이팅, 보넥도 컴백도 화이팅!’ 쓴 적이 있거든요. 그럼 애들이 “점주님 보넥도 어떻게 아세요?” 하고 신기해하죠. (웃음)

 

이렇게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는 비결이 있나요.

제가 철이 없어서 그렇죠. (웃음) 애들 보면 귀엽고 재밌어서 절로 기억이 나요. 가끔 학생 커플도 오는데, 여기 포스트잇에 이름 써서 누구 하트 누구, 이렇게 붙여 놓죠.

 

와, 노포에서 자주 만나는 벽 낙서 같네요?

맞아요. 제가 그걸 보고 이 포스트잇을 만든 거긴 해요. 우리 대학시절 자주 가던 노포에 그런 정겨움이 있잖아요. 친구들 이름 다 써 놓고, 우리 우정 영원히 이렇게 하고. 시대가 변해도 저는 아날로그에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애들은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 들고 사니까 그런 거 안 좋아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아요. 포스트잇에 메모도 적고 그림도 그려서 붙여 두고, 자기들끼리 재밌어 하고 사진도 찍어가고. 그런 공간이 학교 근처에 있으면 좋으니까요.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고객층이 어리다 보니 1+1 상품이 인기 있고, 에너지 음료 같은 것도 많이 사가요. 삼각김밥이나 라면도 많이들 먹죠. 근데 저는 이익보다는 재미와 성장을 추구해요. 그래서 잘 팔릴 것 같은 상품이라도 애들에게 손해다 싶으면 안 팔아요. 음, 예를 들면 소나기 내릴 때 우산이 많이 팔리잖아요. 근데 저는 애들한테 우산 사지 말라고, 빌려준다고 해요. 우산 사는 게 제일 아깝잖아요. 애들 돈도 없는데, 그 돈으로 나중에 컵라면 사 먹고 우산은 아저씨가 빌려줄 테니까 졸업 전에만 반납하라고 해요.

 

 


 

 

‘재미’와 ‘성장’을 중시한다고 하셨는데요. 포스트잇에도 일일이 댓글을 달아 주시더라고요. 어떻게 적으면 좋을지 신경 쓰시는 것 같아요.

많이 고민하죠. 그냥 ‘품절’ 써 놓는 것보다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적어두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잖아요. 특히 애들 대화에서 힌트를 많이 얻어요. 친구 둘이 들어와서 “너 이거 좋아하잖아” 하면, 잘 귀담아들었다가 나중에 그 과자에 ‘○○이가 좋아하는 △△’ 이렇게 적어요. 간혹 학교에 동명이인이 있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러면 다른 △△이들도 와서 “이거 너냐 나냐” 하면서 사가요. 그러면 평범한 상품이 특별해지기도 하죠. 정현이라는 애가 스누피 우유만 사간다고 칩시다. 해당 상품에 ‘정현이만 먹는 우유’라고 써 놓으면 그 상품에 스토리텔링이 생기잖아요. 이렇게 상품 구석구석 아날로그적인 스토리를 얹히려고 노력해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정말 많으시겠는데요.

점포 왔을 때 제가 없으면 찾기도 하고, 제가 퇴근 시간보다 더 늦게까지 있으면 좋아하고 그럽니다. 근처에 학교가 둘이다 보니 애들이 “점주님, 동일고가 좋아요, 설월여고가 좋아요?” 그런 질문도 해요. 그럼 둘 다 좋다고 하고. (웃음) 애들이 마음도 예뻐요. 제과제빵 배우는 애들은 자기가 만든 빵도 가져다주고, 바리스타 자격증 땄다고 커피도 가져다주고. 한 번은 방학을 시작하면서 애들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어요. ‘우리 친구들 너무 순수하고 인사도 잘하고, 그래서 나는 그 자체로 감동이다. 너희들 참 멋지다.’ 그랬더니 평소에 어른에게 칭찬을 많이 못 받아본 아이들이 방문해서는 “점주님, 저 너무 감동했어요. 감사해요.” 인사하더라고요.

 

 


 

 

여기 포스트잇에 ‘점주님 차은우 같아요. 잘생겼어요’ 쓰여 있네요. 직접 쓰신 건 아니죠? (웃음)

아, 애들이 장난으로 그런 걸 많이 써놔요. (웃음) 안 그래도 오늘 인터뷰한다고 자랑하면서 뷰티과 학생에게 “어떻게 메이크업으로 나 차은우 만들어줄 수 있냐” 했더니 “아, 그건 좀 힘든데”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럼 졸업 못해. 그 정도 실력을 쌓아야지” 그랬어요. (웃음)

 

점포 곳곳이 놀이공원처럼 이벤트가 많아요. SNS와 점포의 이벤트가 같이 움직이는 것 같네요.

맞아요. 얼마 전에는 화이트보드에 사다리를 그려 놓고 애들이 직접 타게 했어요. 학교 축제를 시작하니까 뭐라도 해주고 싶더라고요. 학년별로 사다리게임을 해서 뽑힌 학년에 선물을 줘야겠다, 아이디어를 냈죠. 듣자 하니 나중에 학교 방송부에서 “CU 사다리게임, 2학년이 뽑혔습니다” 방송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집에서도 항상 고민해요. 이번엔 어떤 새로운 이벤트를 해볼까 하고요.

 

아무래도 고객이 10대이다 보니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겠어요.

그렇죠. 그런데 저보다 아이들이 더 그런 선을 잘 지켜요.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오래 있지 않고, 저 힘들까봐 딱 볼일 보고 인사하고 가는 아이들도 있고요. 친하게 지내지만 저 역시 잘못 말할 수 있으니 단어 하나도 신경 쓰고, 신체 접촉도 당연히 조심해야죠. 또 질풍노도의 시기인 만큼 친구 관계가 잘 바뀌기도 하고, 커플이 헤어지는 경우도 있고 하잖아요. 그럼 그런 게 눈에 보여도 아는 척하지 않아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물색없이 “너 누구 누구랑 요즘 같이 안 다니더라” 얘기하면 어린 마음에 민감할 수 있잖아요. 10대 때에는 더 상처받기도 쉽고 어른의 말 한 마디에 크게 흔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농담할 만큼 친해도 선을 넘지는 않으려고 해요.

 

 


 

 

아침에 출근하셔서 오후 5시까지 근무하시는데, 나머지 휴식 시간엔 무엇을 하세요?

예전엔 마라톤이 취미였는데 지금은 못하고 있어요. 대신 독서에 취미를 붙였죠. 주로 인문·사회학 서적을 많이 읽는데, 일단 오디오북 ‘윌라’로 긴 시리즈를 다 들은 다음 다시 책으로 읽어요. 올해는 조정래의 <한강> 시리즈를 오디오북과 책으로 독파했고, 이제 <삼국지>를 그렇게 읽어보려고 준비 중이에요. 책을 조금 안 읽으면 뭐랄까, 스스로 도태되는 기분이 들어요.

 

학생들만큼 점주님의 꿈도 클 것 같아요.

저는 저를 브랜드로 생각하고 일해요. CU 하기 전에는 대리점 사업을 했는데요. 그때도 전국 단위로 송출되는 방송을 서너 번 나갔어요. 우수 사례 발표자로도 출연했고요. 어떤 사업이라도 제가 하기 때문에, 저만의 기획과 아이디어로 성공시킬 자신이 있거든요. 화이트보드 게시판, 인스타그램 소통, 상품에 써 두는 공지사항이나 아이들과 주고받는 댓글도 제가 가진 센스를 발휘해서 운영하는 거고요. 저만의 유니크한 개성이라 다른 사람이 따라하려고 해도 못해요.

시험기간이나 대입 수시 기간에는 애들이 사가는 상품에 ‘+1’을 그려줬어요. 한 문제라도 더 맞히고, 한 등급 더 높은 대학 가라고요. (웃음)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결제 후 상품에 그림 하나 그려주는 건데 애들과 저 사이에 스토리가 생기잖아요. 전 이런 것들이 재미있고, 점포가 성장하는 과정이자 제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생각해요.

이곳은 주변에 아파트도 없고, 상권이 발달해 있는 곳도 아니에요. 하지만 아이들이 멀리서도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모습을 보면 벌써 마음이 반갑고 뿌듯하죠. 제 노력이 가닿는 것 같으니까요.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CU는 핫 플레이스지만, 그중에서도 CU광주소태점은 핫플레이스이자 ‘학창시절 가장 친한 친구’로 남는다면 참 좋겠어요.

 

 


 

 

 

인터뷰. 김용훈 점주님(CU광주소태점)

글. 김송희

사진.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