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배우이자 편의점주, CU 광양와우행복점 장예슬 점주님 이야기

매거진 2024.07.27

  

CU 광양와우행복점 장예슬 점주님은 배우 활동을 하며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에게 편의점은 또 하나의 무대처럼 여겨집니다. 아니, 누군가 카메라로 점포를 촬영하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도 분명 영화 속 한 장면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점주로, 때론 배우로 살아가며 ‘나는 내 영화의 주인공’임을 실감한다는 장예슬 점주님을 만났습니다.

 

 

 

장예슬 점주님은 서울에서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알려진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도 다수 출연했죠. 그런 그가 광양에 내려와 편의점을 운영하게 된 건 오랜 시간 CU를 운영한 부모님의 영향이 큽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편의점 일을 자분자분 도우며 자랐으니까요. 2021년 코로나19로 오디션 기회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좋아하는 배우 일을 오래도록 지속하려면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CU 광양와우행복점주라는 인생 두 번째 타이틀 롤을 맡았습니다. 



 번째 선택이었지만 덕분에 팬데믹이 한창일 때 웹드라마에 출연할 기회도 얻고, 촬영 현장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내 인생의 당당한 주연으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또 기쁘게 살아간다는 장예슬 점주님의 성실한 1인 2역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경영학을 공부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어요. 잠시 휴학 중에 아는 언니랑 재미 삼아 ‘전국춘향선발대회’에 출전했는데요. 무대 위에 섰는데도 의외로 별로 떨리지 않더라고요. (웃음) ‘미스춘향 선’에 당선된 이후 자연스레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어요. 스물 셋에 시작했으니 좀 늦은 편이었는데 적성에 맞았는지 ‘드디어 내 길을 찾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소속사에도 들어갔고요. 그런데 연기를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코로나19가 시작됐어요. 오디션 기회가 확 줄어들었죠.

  

 

(상) 2023년 방영한 KBS 2TV <비밀의 여자> 출연 모습

(하) 촬영장에서 남긴 한 컷

 

 

꿈도 찾고 길도 찾았는데, 막막했겠어요.

네, 일이 없다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는 싫어 연기 연습은 물론 이것저것 배우며 열심히 살았지만 점점 지치기 시작했어요. 그때, CU 광양중동점을 운영 중이신 부모님이 광양에 내려와 편의점을 운영해 보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봐 주셨습니다.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주변에서도 “그렇게 고정적인 일이 생기면 연기는 포기하겠다”는 말을 진짜 많이 했고요. 하지만 편의점업은 자리만 잡히면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잖아요. 그때까지만 열심히 해보자 마음먹었어요.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기하는 거 보여줘야지’ 싶어서 작은 배역이라도 더 열심히 기회를 찾았죠.

 

 

 

  

그렇게 오디션과 CU 운영을 병행하던 때, 다행히 대학로 연극에서 비중 있는 역할에 캐스팅이 되셨다고요.

맞아요. 연극을 하게 되어서 너무 좋았는데, CU를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점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많았어요. 더군다나 CU가 아파트 상가에 먼저 오픈하고 주민들은 입주하기 전이라 스태프 구하기도 힘들었거든요. 연극 연습을 하려면 한동안 서울에서 상주해야 해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죠.

 

 

긴 공백 이후에 닿은 기회라 고민이 크셨겠네요.

배우이기도 하지만 CU 점주로서도 날갯짓을 시작하는 시기였잖아요. 이제 막 시작한 점포에 점주가 장기간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는 판단이 섰어요. 속상했지만 극단에 연락해 “죄송하지만 이번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죠. ‘어쩔 수 없구나. 이게 내 무게니까 감당해야지’ 하면서요. 말이 쉽지, 초반에는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이대로 정말 연기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닌가 두렵기도 하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CU에서 점주홍보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됐습니다.

 

 

 

  CU 점주홍보단 웹드라마 <CU 사람들> 출연 모습. 장예슬 점주는 SC 역을 맡았다.

 

 

점주님들이 직접 배우로 분해 찍은 영상이었죠?

네! 망설일 이유가 없었어요. 공고를 보자마자 부지런히 지원했고 면접에도 합격해 점주홍보단 웹드라마 <CU 사람들>에 출연하게 됐죠. 연기 경험이 없는 점주님들이 대부분이라, ‘경력직’인 제게 상대적으로 대사가 많은 역할이 주어졌어요. 편의점주와 SC(Store Consultant, 영업관리직)에 대해 재미있게 구성한 웹드라마였는데, 당시 저는 점주가 아니라 SC 역할을 맡았답니다. (웃음) 마침 그 당시 우리 점포 SC님이 저보다 2살 많은 또래였어요. 어느 날 그날의 마지막 방문 일정이라며 점포에 들어오는데 엄청 지쳐 보이더라고요. 그동안은 SC님 만나면 이런 저런 하소연을 쏟아내고 부탁도 많이 했는데, 비록 연기지만 SC 역할을 해보니 그분들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어요.

 

  

웹드라마를 찍으면서 다른 점주님들과도 친해졌을 것 같아요.

그럼요. 저는 초보 점주였잖아요. 아무리 본사에서 교육을 받아도 베테랑 점주님들에게 직접 듣는 운영 노하우만큼 도움되는 게 없어요. 당시 촬영 장소를 내주신 점주님이 스태프 교육이나 고객 서비스에 대해 많이 가르쳐 주셨지요. 간만에 카메라 앞에 선 것도 좋았지만, 점주로서의 역량도 키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CU 점주홍보단 웹드라마가 또 다른 기회를 불러왔다고요. 

연극을 포기하니까 웹드라마 기회가 왔잖아요. 욕심부리지 않으면 다 기회가 오는구나 싶어요. 점주홍보단 웹드라마를 찍은 이후 BGF리테일에서 다른 출연 제의도 해주셨어요. 모델 정혁 씨와 함께 점주 대상 웹드라마를 촬영했고, 영화관을 빌려 상영회도 열었답니다.

제가 출연한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적이 있어서 스크린 속 저를 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번 웹드라마처럼 비중이 큰 연기를 거대한 영화관 스크린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정말이지 감회가 새롭고 감동이 밀려오더군요. CU 점주가 되면서 지금까지 이상의 경험을, 덕분에 많이 할 수 있었어요.

 

 

 

CU를 운영하면서 연기를 향한 여정에 열정이 더해졌다.

 

 

점주와 배우, 두 가지 역할이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 같아요.

제가 편의점을 하기 전엔 연기 말고는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근데 그런 나라는 사람에게 편의점주라는 하나의 역할이 또 주어졌잖아요. 활짝 웃고 밝게 인사하면서 긴장을 푸는 법도 배웠어요. 그래서 오디션 가면 예전처럼 떨지 않아요. 제 앞의 감독님이나 제작자들도 CU 고객일 수 있잖아요. (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를 하지 않을 때에도 나에게 돌아올 곳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편해져요.

 

 

단골 고객들이 영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겠네요.

캐릭터가 특이한 고객들이 계시잖아요. 저희 점포에 자주 오시는 할머니 고객이 계시는데, 매일 물류 들어오는 시간에 칼같이 오셔서 유통기한이 가장 최근인, 신선한 상품만 골라 사가세요. 그 외에도 구멍가게처럼 깎아달라는 분들도 계시고. (웃음) 이렇게 좀 재밌는 손님을 보면 상상을 막 하게 돼요. 영화 속 캐릭터처럼요. ‘저 사람은 어떤 과거를 가졌고 어떻게 지금의 캐릭터가 됐을까.’ 초등학생 고객들을 대할 때면 ‘어쩜 저렇게 순수할까’ 배우기도 하고요. 생활 연기에 편의점만큼 도움되는 장소가 또 없어요. 빈말이 아니라 저는 정말 CU 하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일상에서도 고객들을 관찰하면서 연기에 참고하기도 하고, 재정적으로도 안정되어 감사한 마음이 참 큽니다. 주변 연기자들에게 CU를 추천하기도 한다니까요. (웃음)

  

 

순수한 아이들을 비롯한 개성 넘치는 고객들의 모습은 연기에도 도움을 준다.
 

최근에 출연하신 영화 <하이재킹> 촬영 당시 잊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고요. 

영화 촬영지가 대전이었어요. 3개월 동안 매일 현장에 가야 했는데요. 오전 7시에 촬영 시작이라 모두 눈을 붙이며 쉬고 있었어요. 하지만 전 점주이니 그날도 예외 없이 새벽 5시에 눈을 비비며 발주를 준비했죠. 근데 어떤 분이 또 발주를 하고 계신 거예요. 서로 눈을 마주치곤 물었죠. “혹시 CU?” 너무 반가웠어요. (웃음) 연기하면서 CU 하시는 분이 또 있구나 싶어서 더 친밀해졌답니다. “예슬아 너 이거 발주했어?” “저 안 했는데 선배님 발주하셨어요?” 막 이런 대화 나누고. (웃음) 주변에서도 우릴 신기하게 바라보고. 영화를 찍을 때마다 좋은 인연들이 남는데 <하이재킹>도 그렇게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어요.

 

 

촬영 현장만큼 CU에서 만난 인연도 소중하시겠어요.

3개월 동안 영화 촬영으로 자리를 비웠다가 오랜만에 매대에 서니 단골 고객들이 정말 많이 반겨 주셨어요. 제가 젊은 축이라 스태프로 알고 계신 고객들도 많은데, “안 보여서 그만둔 줄 알고 얼마나 찾았다구” 하시면서 “다시 봐서 너무 반갑다” 해주시더라고요. 어떤 고객께서는 “회사에서 너무 힘들어서 지쳐 있었는데, 점주님께서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말씀해 주셔서 기분 좋게 집에 갈 수 있었어요”라며 인사를 전하시기도 했습니다. 제 인사를 기억해 주시고 반겨주는 분들이 있으니 저도 힘이 나죠.

 

  

앞으로 점주님이 어떤 미래를 그려 나갈까, 벌써 궁금해요.

올해 소속사와 계약이 끝났어요. 새롭게 연기 2막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물론 CU 점주로서도 계속, 꾸준히 잘해나가고 싶어요. 마트가 먼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생활용품과 신선식품들을 열심히 들여놓고, 설령 인기가 없는 상품일지라도 필요한 고객이 있다면 그 한 분을 위해 정성껏 준비하고요. 매일을 영화 찍듯이, 우리 점포 안에 담긴 모든 감정과 인연을 만끽하며 지내고 싶습니다. 이곳 CU 광양와우행복점이 제게는 또 하나의 무대이니까요.

 

 


 

 

 

 

인터뷰. 장예슬 점주님(CU 광양와우행복점)

글. 김송희

편집. 성지선

사진. 이효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