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미세한 변화는 하나 둘 단서가 되어 마침내 확신에 이릅니다. ‘좋아하는구나’. 여기 한 남녀가 있습니다. 시나브로 물들기 시작해 어느새 깊이 스며들었다는 두 사람.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나요. 여전히 사랑의 빗줄기 속이라는 BGF리테일 유가희‧김수한 책임의 호우시절好雨時節 속으로 함께 걸어 보시죠.
그 여자의 일기 #1.
비에 젖은 어깨가 자꾸 생각나
안녕하세요. 편의점 CU의 냉동즉석식품 MD, BGF리테일 HMR팀 유가희 책임입니다. 저희는 결혼한 지 세 달차에 접어든 신혼부부예요. 아직 서로에게 적응하며 투닥투닥 신혼살림을 꾸려가는 중이랍니다. 우리 얘기가 재미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최대한 솔직하게 답해 볼게요. (웃음)
남편이요? 호수 같은 사람이에요. 잔잔한 물결처럼 다정해서 함께 있으면 편안하죠. 저는 감정 변화가 큰 편이라 마치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같거든요. 남편은 그런 제게 안정감을 줍니다. 떠올려보면 남편의 다정한 면에 마음이 갔던 것 같아요.
우리는 2016년 입사 동기인데요. 사실 연수원에서 남편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 동기가 워낙 많아서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입사하고 1년 뒤에 남편이 있는 강서영업부에 SC로 발령받아서 본 게 첫 기억입니다. 저보다 세 살 많아서 동기 중에는 가장 연장자였는데, 그때만 해도 그저 잘 챙겨주는 오빠 정도로 생각했죠. 나중에는 서로 연애나 소개팅 얘기도 서슴없이 나눌 정도로 친하게 지냈어요.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모르고 말이에요. (웃음) 그러다 동기 모임이 있던 어느 날이었어요,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어서 오빠의 우산을 같이 쓰게 됐어요. 몰랐는데 오빠가 우산을 제 쪽으로 기울이느라 정작 자기는 한쪽 어깨가 다 젖었더라고요. 동기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뒤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어찌나 놀리던지! 오빠 보고 ‘너 좋아하는 거 아니냐’면서요. 왜인지 그날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 잊히지 않더라고요. 이후로 그 사람의 다정함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요.
그 남자의 일기 #1.
톡, 톡, 가랑비처럼 나도 모르게
BGF리테일 강서지역부에서 데이터 담당으로 일하는 김수한 책임입니다. 우리집의 든든한 가장인 유가희 책임의 지시(?)를 따라 뚝딱뚝딱 움직이고 있는 남편이죠. 현명하고 똑똑한 아내는 파워 J 성향으로 꼼꼼한 계획과 추진력을 갖고 있어요. 매사 느긋한 편인 제게 활력과 긴장감을 안겨준답니다, 하하.
우리 인연의 시작은 8년 전인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신입사원 연수에서 처음 본 아내는… 예뻤습니다. (웃음) 바쁜 연수 일정으로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예쁘다는 인상으로 남아있네요. 키 크고 하얀 사람이 이상형이라 자연스레 눈길이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후에 강서지역부 영업팀에서 함께 일하면서 동료이자 한 사람으로서 괜찮은 친구구나 생각했죠.
4년 뒤, 가희가 본사 HMR팀으로 발령받았어요. 가희랑 잘 아는 영업팀 남자 선배가 저와도 친해지고 싶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자리가 마련됐죠. 이후로 셋이 자주 만났고요. 돌이켜보면 언젠가부터 그 선배가 가희랑 저 사이에서 오작교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가희 씨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가희 씨가 수한 씨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다” 해놓고는 가희에게 “수한 씨가 예전부터 가희 씨를 좋아했다”고 했다더군요. (웃음) 그럼 정확히 언제부터였느냐고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가희에게로 마음이 기울어 있는 저를 알게 됐을 뿐이에요.
그 여자의 일기 #2.
친구와 연인, 그 어디쯤
저는 정말 그때 오빠한테 마음이 없었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빠가 저를 먼저 좋아했던 게 분명해요. 이제 그만 인정해 김수한. (웃음)
자의 반 타의 반 시작된 미묘한 기류는 썸으로 이어졌어요. 항상 동기나 직장 동료와 함께 보다가 단둘이 보려니, 명분이 있어야 하잖아요. 우리가 선택한 첫 데이트의 핑계는 ‘떡볶이’였어요. 둘 다 떡볶이를 좋아하는데 제가 살던 집 근처에 유명한 떡볶이 맛집이 있었거든요. 거길 같이 가보자고 하면서 처음으로 주말 데이트를 잡았답니다. 그날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제가 쨍한 초록색 상의와 흰색 하의를 입고 나왔는데, 저 멀리서 오빠가 저와 정말 똑같은 색상으로 위아래를 맞춰 입고 걸어오는 거예요. 아니 어떻게 첫 데이트에서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죠?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서로 옷을 보고 민망해서 한참 웃었다니까요. 지금도 커플 아이템이 전혀 없을 정도로 겸연쩍어 하는데, 당시에는 오죽했겠어요. 결국 저는 옷가게에 들러 새 옷을 하나 사서 갈아입었답니다. 참, 그날 정작 데이트의 목적이었던 떡볶이는 먹지 않았어요. 영화 한 편 보고 나와 곧장 술 한잔 하러 갔거든요. 떡볶이는 철저히 이용당한 거죠. (웃음)
저희는 연애 시절에도 친구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서로 장난을 많이 쳤어요. 아마도 친한 동기로 지낸 시간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연애 초반에는 오빠가 하도 장난을 많이 쳐서 홧김에 소리친 적도 있어요. “내가 지금 여자친구야, 동기야?!” 하고요. (웃음) 그만큼 서로 겉치레가 없어서 더욱 각별해졌지 않나 싶습니다.
그 남자의 일기 #2.
소중해서 더욱 지켜주고 싶은
몇 차례 데이트를 거치면서 마침내 정식으로 ‘1일’이 되었던 날은 오히려 덤덤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첫 데이트부터 깊은 고민 끝에 마음먹은 일이었거든요. 사내 연애라 보는 눈도 많을 테고 혹여 헤어지면 동기들을 어떻게 보나 싶은 마음도 있고, 또 제가 가희보단 세 살이 많아 적지 않은 나이이기도 하니, 여러모로 가벼운 마음으로 이 만남을 시작할 순 없겠더라고요. 첫 데이트부터 이미 저는 우리 사이를 진지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인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사내연애지만 근무지가 달라서 요주의 장소만 피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만났어요. 친한 동기로 지낸 시간이 길었던 터라, 일찍이 ‘둘이 뭐 있는 거 아니냐’며 놀리던 다른 동기들도 이제는 우리가 아무 사이 아니라고 여겼거든요. 1년 남짓은 잘 숨겨 왔어요. 결국엔 하나 둘 빈틈이 생겨서 몇몇 사람들에게는 들키고 말았지만요. 한번은 가희가 SNS에 실수로 둘이 찍은 사진을 전체공개로 올린 거예요. 1분도 안 돼서 바로 삭제했는데 그 찰나에 동기 하나가 발견하곤 바로 연락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또 누군가 우리가 데이트하는 모습을 봤다고 소문을 내서 저희 귀에 들려온 적도 있고요. 그래도 아는 사람들이 쉬쉬해준 덕분인지, 결혼 소식을 전하기 전까지 우리 사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답니다. 이 정도면 저희 비밀연애 제법 성공적이었죠? (웃음)
그 여자의 일기 #3.
헤어질 듯 헤어질 수 없었던 우리
연애가 언제나 순탄하지만은 않았어요. 길에서 목청 높여 싸우고, 카페에서 엉엉 울기도 하고, 이별의 문턱까지 간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이 오래 가진 못하더라고요. 길어봐야 한 시간? (웃음) 헤어지려는 순간에도 오빠가 저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는데 걸어가는 동안 제가 잘해주지 못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더라고요. “그동안 못 해줘서 미안해”하니까, 오빠는 그런 저를 보며 눈물을 쏟고 있더라고요. 결국 그 자리에서 바로 화해했답니다. 결혼한 뒤로 오빠는 종종 서운할 때마다 “나한테 못 해줘서 미안하다며! 잘해준다며!”하고 그때 일을 얘기하곤 해요. 하지만… 이젠 낙장불입이니까요.
사실 저는 남편이 비혼주의인 줄 알았어요. 서로 연애사를 주고받던 동기 시절에 오빠가 결혼 생각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저도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애하면서 그 이상은 딱히 생각해본 적 없었고. 그러다 사귄 지 2년 무렵에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오빠가 결혼 얘기를 슬며시 꺼내더라고요. 무턱대고 ‘결혼하자’란 말보다 자신이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됐어요. 제가 워낙 계획 짜기를 좋아하다 보니, 결혼할 마음이 들고부터는 제가 앞장서서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답니다.
그 남자의 일기 #3.
좌충우돌 프러포즈 대작전
제주도에서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로 정식으로 청혼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큰맘 먹고 하와이로 떠났답니다. 그런데 아뿔싸, 주문해둔 프러포즈 반지가 제때 도착하지 않은 거예요. 게다가 고대했던 하와이 선셋비치의 일몰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고, 급한 대로 준비해 내민 것이라곤 장난감 반지였으니…. 퇴짜 맞을 수밖에요. (웃음)
서로 마음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이대로 프러포즈를 넘길 순 없었어요. 남산 자락이 보이는 호텔에서 재도전했죠. 호캉스 가자는 말에 가희가 눈치챈 듯했지만, 처음 호텔 방에 들어왔을 땐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어요. 오늘이 아닌가 보다 했는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수영도 하고 저녁을 먹으며 맘껏 쉬었죠. 사실 우리가 밖에 있는 동안 방을 꾸며 달라고 호텔에 부탁해 두었거든요. 시간을 벌으려 밖에서 아이스크림이나 다 먹고 들어가자고 했지만 가희가 기어코 방에 가서 먹겠다는 거예요. 내 속도 모르고…. 다행히 이번엔 때맞춰 준비가 완성되어 감동적인 프러포즈를 안겨줄 수 있었어요. 방을 가득 채운 풍선과 촛불, 꽃과 편지를 보는 가희의 표정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 열심히 사진 찍는 통에 아이스크림은 다 녹아버렸답니다.
한 부부의 일기 #0.
그렇게 가족이 된다
유가희 책임 한집에서 지내면서 연인 시절보다 훨씬 다정하고 부지런한 남편의 모습에 놀랐어요. 매일 아침 남편이 과일과 달걀로 싸준 아침 도시락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답니다. 요리도 청소도 잘 해내는 가정적인 남편을 보며 ‘결혼 잘했구나’ 생각해요. 우리 남편, 정말 최고다!
김수한 책임 여전히 우리 부부는 웃다가 싸우다가 다시 웃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살림 문제로 매일같이 부딪히던 나날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아무렇게나 벗어둔 양말이나 검게 타버린 빵 정도는 서로 흐린 눈으로 모른 척하면서요. (웃음) 이렇게 한가족이 되어가는 거겠죠? 이 인터뷰가 우리의 흑역사로 남지 않도록, 언제까지나 사이좋은 부부로 쭉 함께하자!
인터뷰. 유가희 책임(BGF리테일 HMR팀), 김수한 책임(BGF리테일 강서지역부)
글. 강예슬
사진.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