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 DIARY] 이종해 책임의 조혈모세포 기증 후기

매거진 2024.07.02

 

 

“안녕하세요. 조혈모세포 기증 건으로 연락드렸어요. 이종해 님과 90% 유전자가 일치하는 수혜 아동이 있습니다.” 지난 3월, 뜻밖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으로부터 온 전화였죠. 기적의 시작이었습니다.

 


 

 

20대의 어느 날 남긴, 자기와의 약속

처음엔 잠시 기억을 되짚어야 했어요. ‘조혈모세포?’ 기억을 되짚어보니 20대이던 2011년, 헌혈을 하다가 ‘조혈모세포 기증’란에 ‘동의’를 체크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가끔 헌혈은 했지만, 그렇다고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헌혈 차량을 만나면 두어 번 한 정도죠. 당시 간호사님이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요. 만약 내 조혈모세포를 기증받을 수 있는 수혜자가 나타난다면 기증하겠다고 동의한 기억이 나더군요.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려면 유전자가 90% 이상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로 흔치 않다던 간호사님의 설명도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수혜 어린이는 다섯 살이고, 몸무게가 21kg도 안 나가요.” 다섯 살. 백혈병을 앓고 있다던 그 아이가 제 딸 윤솔이와 같은 나이였습니다. 망설임 없이 저는 대답했습니다. “네, 하겠습니다.”

 

 

 

 

수혜 어린이는 다섯 살이고, 몸무게가 21kg도 안 나가요.” 

다섯 살. 백혈병을 앓고 있다던 그 아이가 제 딸 윤솔이와 같은 나이였습니다.”

 

 

 

 

차근차근 이뤄진 기증 절차 

동의를 했다고 해서 일사천리로 기증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까다로운 절차들이 남아 있었거든요. 유전자가 90% 이상 일치하기는 하지만, 나머지 10%의 유전자도 기증할 수 있는지 혈액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유전자가 100% 일치해도 증여자(저)의 건강 상태가 좋아야 한다고 해서 여의도성모병원도 방문했지요. 혈액 검사와 엑스레이 검사를 포함해 여러 가지 건강 검진을 거쳤는데요. 기본 검진은 물론 감염병 검사도 세밀하게 이루어집니다. 모든 검사를 마친 후 비로소 ‘조혈모세포 증여가 가능하다’는 소견을 받았고요.

 

마지막 절차는 다름아닌 휴가였습니다. 유전자 검사와 건강 검진이 끝나면 조혈모세포 촉진 주사를 나흘간 맞아야 하고, 채집 당일 전날까지 촉진제 주사를 맞은 후 입원해야 하거든요. 이 모든 것을 진행하려면 적어도 사흘은 휴가를 내야 합니다. 연차를 써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회사에서 조혈모세포은행의 공문을 받은 후 공가 처리를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휴가를 얻어 조혈모세포 기증을 위한 나머지 절차를 밟을 수 있었지요.

 

 

 

 

어렴풋한 어린 시절의 기억

기증 절차를 하나씩 밟으며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다행히 저희 두 아이는 크게 아픈 일 없이 잘 자라고 있지만, 저는 중학교 시절 고열에 시달렸던 적이 있어요. 감기약도 먹고, 잠도 많이 자고, 동네 병원에서 주사도 맞았는데 열이 떨어지지 않았죠. 결국 큰 병원에 갔는데, 당시 의사 선생님이 혈액 검사를 해보시더니 “백혈병이 의심된다”는 겁니다. 저도 놀랐지만 부모님이 크게 절망하셔서 집안에 그야말로 큰 그늘이 드리워졌었죠. 알고 보니 낮은 백혈구 수치로 인한 오진이었고, 백혈병이 아니라는 판명이 났지만요.

 

하지만 만약 그것이 정말 백혈병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저희 부모님 역시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간절하게 바라셨겠지요. 당장 제 아이들이 아프다는 상상만 해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데, 아픈 아이 부모님은 오죽할까요. 하늘이 도와 2011년 기증에 동의한 저의 유전자와 2024년 백혈병 판정을 받은 아이의 유전자가 일치해 이렇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싶었습니다. 기적을 꿈꾸고 있던 아이와 그 가족들에게 제가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당장 제 아이들이 아프다는 상상만 해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데, 

아픈 아이 부모님은 오죽할까요.”

 

 

 

 

심사숙고 끝의 결정과 채집 시작 

저는 지금 두 아이의 아빠이자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고, BGF리테일 재무팀의 세무담당이기도 합니다. 조혈모세포를 기증한다고 해서 기증자의 건강이 나빠지거나 상하지는 않지만, 하루 이상 집을 비워야 하는 만큼 제 몸에 대한 문제를 혼자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장이다 보니 회복 기간 동안 저의 건강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고려해야 했고요. 아내는 만에 하나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생기지는 않을지 특히 걱정했는데요. 조혈모세포협회의 담당 코디님에게 환아가 항암치료를 받는 다섯 살 아이라는 말을 직접 들은 뒤에는 두말 않고 기증에 동의해 주었습니다.

 

대망의 세포 채집일 당일. 이른 아침 병원에 입원한 뒤 오전 9시부터 5시간 동안 채집이 진행됐습니다. 채집 과정은 성분 헌혈과 비슷한데요. 오른팔과 왼팔에 바늘을 꽂고 300cc의 혈액을 채집하는 것입니다. 1차 채집 후 2차 채집이 필요할 수 있어 하루는 병원에 머물러야 했는데요. 채집된 조혈모세포는 다른 병원에 입원 중인 환아에게 바로 보내진다고 합니다. 다행히 저는 2차 채집을 진행할 필요가 없어 다음날 바로 퇴원할 수 있었고요.

 

 

 

 

 

 

 

기증을 통해 서로 주고받은 마음

제 세포를 기증받은 환아의 부모님은 조혈모세포협회를 통해 감사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2020년생인 아이는 세 살 무렵 ‘횡문근육종’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일 년간 항암치료를 했지만 2024년 2월에 결국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요. 직접 만나서 감사를 표하고 싶었지만, 규정상 만남이 불가하여 대신 편지를 보낸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진단을 받은 이후 작은 몸으로 항암과 방사능 치료를 견뎌내는 아이의 모습과, 힘든 시간을 함께 하며 기적만을 기도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편지 안에 절절히 담겨 있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만큼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도 꾸준히 후원을 하겠다는 진심 어린 대목에서는 저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지요.

 

꾹꾹 눌러쓰신 아이 부모님의 편지를 통해 알게 된 또다른 사실이 있어요. 가족이 아닌 공여자와 아이의 유전자가 일치하여 이식까지 가능한 확률은 무려 2만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수술 절차를 밟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사나흘 정도 주사를 맞은 다음 혈액을 채취할 뿐인데, 한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뿌듯했습니다. 이 벅차오르는 보람이 저 또한 환아에게 받은 선물이겠지요. 그래서 저도 정성껏 답장을 쓰고 종이접기 놀이세트도 하나 사서 보내드렸습니다.

 

 


 

“가족이 아닌 공여자와 아이의 유전자가 일치하여 이식까지 가능한 확률은 무려 2만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사나흘 정도 주사를 맞은 다음 혈액을 채취할 뿐인데, 한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뿌듯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은 경험

저는 제가 타의 모범이 되는, 아주 선하고 이타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기억도 어렴풋한 옛날 동의서에 체크를 해뒀고, 13년이 지난 뒤 우연히 연락을 받아 기증 절차를 밟았을 뿐인데 이렇게 동네방네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져 면구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퇴원할 때 조혈모세포협회에서 이번 경험을 널리 나눠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고 심지어는 일부 부정적인 인식도 있어 외국에 비해 기증이 활발하지 않답니다. 국내 기증은 1년에 300건 정도밖에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해요. 영화 같은 미디어에서 고통스럽게 채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공포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회복 후유증이나 기간에 대한 우려 때문에 기증을 포기하는 일도 많고요.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제가 경험한 바로는 촉진제를 맞은 뒤 헌혈하듯이 조혈 모세포를 채취할 뿐이었거든요. 간혹 하루이틀 정도 감기몸살 같은 증상을 겪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저의 경우에는 바로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고요. 채취 준비를 위한 시간을 내야 하고 완전히 회복되기까지 경과를 관찰해야 하지만, 채취 과정이 고통스럽거나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항상 밝고 행복하기를

세포를 기증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 문득, ‘그 아이는 살아낼 아이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열악한 환경의, 더 연약하고 어린 아이였다면 그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일 년이나 받고 이겨내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만약 그랬다면 저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기적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테고요. 저는 종교도 없고, 평소에 행운이나 미신을 신봉하지도 않는 냉소적인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그 기적의 끈이라는 것을 믿어보고 싶었습니다.

 

조혈모세포협회 측에서는 향후 환아의 회복 여부가 궁금하다면 문의를 해달라고 했지만 기증 이후 따로 연락해보지는 않았어요. 분주한 코디님을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그 아이는 당연히 건강해졌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조혈모세포 공여를 받은 후에는 수혜자의 혈액형이 기증자와 같은 혈액형으로 바뀐다고 하는데요. 어딘가 저와 같은 AB형을 가진 다섯 살 아이가 씩씩하고 밝게 자라나길 바랄 뿐입니다.

 

 

 

“저는 종교도 없고, 평소에 행운이나 미신을 신봉하지도 않는 냉소적인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그 기적의 끈이라는 것을 믿어보고 싶었습니다.”

 

 

 

 

기적의 일부가 된다는 것

평소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저는 ‘딱히 큰 꿈은 없다’고 답하곤 합니다. 대신 작은 행복을 좋아해요. 가족과 다같이 식사하고 때로는 보드게임을 하면서 웃고 즐거워하는 저녁의 여유를 사랑합니다. 2학년 큰아들, 다섯 살 막내딸,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앞으로도 건강하게 작은 행복을 가꿔가고 싶습니다. 그러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번처럼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주면서요.

 

별로 대단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은 저의 조혈모세포 기증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는 꼭 말해주고 싶어요. 저도, 당신도, 그러니까 누구나, 누군가의 기적이 되어줄 수 있다고요.

 

 


 

“꼭 말해주고 싶어요. 저도, 당신도, 그러니까 누구나, 누군가의 기적이 되어줄 수 있다고요.”

 

 

 

 

 

 

인터뷰. 이종해 책임(BGF리테일 재무팀)

글. 김송희

사진.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