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 편의점 소스 개발자는 무슨 일 해요?

매거진 2024.06.20

 

 

지난 6 13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식품 박람회. 오늘 이곳을 방문한 BGF리테일 HMR 김종민 책임은 여러 냉장식품과 떡볶이와 간편식품, 소스 전문 회사들을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식품연구원으로 일해온 그는 맛의 차이를 찾아 헤매는 일명소스의 설계자’입니다. 찍거나 섞는 것만으로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변신시키는 소스, 마법 같은 일의 매력을 그에게 직접 들어봤습니다.

 


 

탄탄멘, 쌀국수, 카레, 스파게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편의점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음식입니다. 어느 때부턴가 세계의 맛이 모두 모인 듯, 편의점 푸드의 라인업도 화려해졌는데요. 실제로 최근 5개년간 CU의 양식/일식/중식/퓨전음식 도시락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답니다.

 

한국 하고도 우리 동네 편의점에서 세계의 맛을 가능케 하는 비결은 바로 ‘소스’입니다. 서양 요리 콘셉트의 스파게티, 아시아 음식 콘셉트의 커리, 모던 중식 콘셉트의 짜장을 떠올려보세요. 밥과 면 등 원재료는 같아도 어떤 소스를 쓰느냐에 따라 요리의 국적이 바뀌지요. 이처럼 소스는 맛의 변신,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요리의 핵심입니다.

 

편의점 푸드의 맛이 이렇게 다양해질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소스 덕분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온갖 떡볶이소스나 족발소스부터 치폴레소스에 이르기까지 편의점 푸드에 들어갈 소스를 연구 또 연구하는 소스 개발자 덕분이죠. 어떤 소스가 들어가는지에 따라 우리는 때로 통인시장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린 시절 분식트럭 앞에 있는 것도 같고, 때로는 국경을 넘어 멕시코 어느 식당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처럼 섬세한 테이스팅, 단호한 판단력으로 편의점 푸드의 변신을 결정하는 CU의 소스 개발자, BGF리테일 HMR팀 김종민 책임을 만났습니다.

 

 

 

 

 

 

 

 

 

반갑습니다. CU에서 HMR팀은 어떤 일을 하나요?

저희 HMR팀은 냉장/냉동 제품을 담당하고 있어요. 냉장 떡볶이나 면, 죽, 햄버거, 핫바, 소세지, 어묵, 1차 농수산물, 냉동 상품, 즉석조리식품 등이죠. 그중에서도 저는 주로 냉장 떡볶이, 면, 죽에 사용되는 소스나 베이스를 개발하는 업무를 맡고 있어요.

 

 

소스나 베이스를 만든다고 하니 왠지 요리사 같기도 해요. 

음, 요리사와 식품연구원은 비슷하면서도 확실하게 다릅니다. 요리사가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해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는 요리를 내놓는다면, 식품연구원은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상품을 개발하되 장기간 유통이 가능하고 전국에서 동일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제품을 양산하죠.

저는 식품공학을 전공했는데요, 학과 교수님께서 대기업 식품연구원 출신이셨어요. 수업시간마다 상품 탄생 과정에서 일어났던 사건사고와 사연을 이야기해주셨죠. ‘아, 정말 재밌겠다’ 생각하면서 저도 모르게 식품연구원이라는 직무에 흥미를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요새는 소스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입소문을 타면서 개별 제품으로까지 출시된 불닭볶음면 소스, 짜파게티의 비법을 담은 짜파게티 소스나 팔도비빔면 소스만 봐도 그렇죠.

맞아요. 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을 떠올리시면 소스의 중요성이 쉽게 와닿으실 거예요. 후라이드로만 먹어도 맛있지만 소스를 더하면 완전히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잖아요. 이처럼 소스의 본질은 원재료의 맛을 상승시키면서 아예 새로운 맛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다 같은 면이어도 어떤 소스를 넣느냐에 따라 중국 요리가 될 수도 있고, 이탈리아 요리가 될 수도 있죠. 맛을 변신시키되 무조건 맛있게, 그게 소스를 개발하는 목표이기도 합니다.

 

 

 

 

 김종민 책임이 개발한 소스를 넣은 제품들.

 특히 이번 리뉴얼 자이언트 떡볶이 소스는 수십 번의 레시피 수정을 거쳐 깊이 있는 칼칼한 맛을 구현했다.

 

 

 

 

CU에서는 주로 어떤 소스를 만드셨나요?

정말 여러 소스를 개발했어요. 후추네 훈제삼겹 매콤소스, 아딸 통계란떡볶이컵 소스, 로코스 폴드포크덮밥 소스와 치폴레소스, 광동 쌍화족발소스, 열라면 소스, 통인시장 기름떡볶이소스, 시니어마켙 누룽지곰탕베이스와 꿀된장소스, 자이언트 추억의 밀떡볶이소스…. 가장 최근에는 리뉴얼 자이언트 떡볶이 소스를 개발했고요. 다른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이라고 해도 제품 개발 과정에는 CU가 반드시 참여하기 때문에 꼭 의견을 주고받는답니다.

 

 

 

 

 

  소스를 시험하고 만드는 과정은 과학 실험과 같다. 적게는 20가지, 많게는 40가지 이상 원료의 비율을 조정하며 배합비를 설계한다. 

 

 

 

 

 

소스에 따라 음식 맛이 크게 좌우되잖아요. 중요한 일인 만큼 시작부터 막막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되죠. (웃음) 크게 복잡하지는 않아요. 먼저 MD와 함께 제품을 기획하면서 궁극적으로 어떤 제품을 만들지 방향성을 정합니다. 간편식이나 HMR, 스낵 등 편의점 푸드도 종류가 다양해요. 어떤 음식에 접목하는 소스인지 파악하고 최대한 그 방향성에 맞도록 소스를 개발하고요. 제조사에 배합비를 전달한 다음 샘플을 받고, 관능검사에서 수정사항이 없으면 배합비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후 1회 주문 시 최소 수량, 견적 협의까지 마치지요. 말하고 보니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네요. 하하.

 

 

관능검사는 그러니까, 연구원이 시제품을 경험해보는 과정인 거죠?

네, 식품연구원이 정말 많이 쓰는 단어이기도 해요. 사람이 스스로 측정 도구가 돼 식품의 특성을 평가하는 방법이죠. 냄새, 맛, 향미, 텍스처, 온도 및 통감 등 감각기관이 감지하는 식품의 관능적 특성을 분석해 소비자 기호도를 측정하는 거예요. 우선 평가 대상의 온도를 가장 인지가 쉬운 25℃로 맞추고, 육안으로 물성을 체크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향을 맡고 테이스팅해 분석하죠. 소스의 완성도와 맛은 사실 99%가 육안과 향미에서 걸러진답니다.

 

 

 

 

 

0.01g을 더 넣거나 덜 넣어도 맛에 현격한 차이가 날 수 있으므로 무게를 달 때는 늘 신중을 기한다.

 

 

 

 

 

맛이란 상당히 주관적인 기준인데 어떻게 객관화하는지도 궁금해요. 

관능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 진행합니다.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 감칠맛의 밸런스를 잡은 뒤 가장 중요한 제품의 ‘특징’이 잘 부여되었는지 꼭 확인해요. 맛의 밸런스가 잘 잡혀 있다고 해도 상품의 특징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저 밸런스만 잘 잡힌 이름 모를 소스이기 때문이죠.

계속해서 관능을 보다 보면 혀가 지쳐요. (웃음) 오전부터 오후까지 같은 소스만 먹다 보면 나중엔 무미(無味)하게 느껴지죠. 그럴 때마다 짝꿍 MD에게 관능을 요청한다든가, 팀원들을 동원해 대중적인 맛을 찾아나갑니다. 오랜 시간 식품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스스로 세 가지 기준을 세웠어요. 이걸 모두 충족해야 비로소 팀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출시를 결정합니다.

자신이 만족한다. 

담당 MD가 만족한다.

③ 주변 사람들이 만족한다.

제가 정한 최소한의 기준이에요. 이 허들을 모두 넘어서야만 호불호가 없는 소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스가 원재료의 맛을 상승시킨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면과 함께 먹을 것인지, 밥과 함께 먹을 것인지에 따라 소스 배합이 달라져요. 원재료에 버무려지는 소스도 있지만, 디핑처럼 따로 곁들이는 소스도 있고요. 음식의 종류에 따라 소스의 성격도 달라지니,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배합비를 설계해야 최상의 맛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합비 설계라는 게 참 간단치가 않아요. 소스의 특징이 강렬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발현될 때까지 정말 여러 차례 반복 수정을 거쳐야 해요. 맵고 짠 소스를 너무 자주 맛보다 보니 식욕이 사라져서 점심도 거를 때가 많아요. 심지어 소스 개발자 중에는 위경련을 달고 사는 사람도 있고요.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걸 보면 재미는 있나 봅니다. (웃음)

 

 

 

 

 

 원재료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부터가 소스 개발의 시작이다. 

 

 

 

 

 

최근 리뉴얼한 자이언트 떡볶이 소스도 개발했다고요? 이미 인기가 많았던 제품이라 리뉴얼에 부담이 컸을 것 같아요.

입사 6개월 만에 자이언트 떡볶이 리뉴얼 업무를 맡았어요. 사실 걱정이 많았죠. 자이언트 떡볶이는 팬덤이 대단한 상품이었니까요. 기존 고객도 만족시키면서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만큼 맛있게 리뉴얼해야 하니까요. 그때 팀장님이 “일단 전국 떡볶이 맛집부터 돌아보라”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직접 먹어보고 경험하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으니까요.

맞아요. 팀장님의 말씀을 듣고 당장 담당 MD랑 서울, 대구, 부산, 인천, 강원도 등 전국에 유명하다는 떡볶이 맛집은 거의 다 돌았는데요. 우리끼리 농담 삼아 ‘떡동여지도’ 하나 만들었다고 했을 정도였죠. 신기하게도 집집마다 고유의 맛이 확연하더라고요. 왜 떡볶이 맛집으로 인정받는지 실감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전국구 편의점 상품을 만드는 거니까 호불호 없이 대중적인, 그러면서 최고의 맛을 찾아야 했는데요. 집집마다의 특징과 매운맛, 짠맛, 단맛, 감칠맛 등등 나름의 점수표를 만들어 분류한 다음 CU만의 떡볶이 소스 맛을 그려나갔습니다. 몇 날 며칠을 지하 연구소에서 떡볶이만 먹으면서 테스트했죠. 아주 강렬한 기억이에요. (웃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참가하는 박람회, 그 덕에 소스를 바라보는 눈이 더 깊어지고 있다.

 

 

 

 (좌) 박람회에서도 직접 테이스팅하며 식품의 맛과 향미, 텍스처 등을 경험해본다.

 (우) 참고할 수 있거나 협업 가능성이 보이는 식품은 상세하게 문의하고 사진을 찍어 남긴다.

 

 

 

 

그렇게 탄생한 자이언트 떡볶이 소스, 배합비가 아주 독특해요. 고추장에 채소와 가쓰오부시 육수를 더했다고요.

요즘 고객들은 맛과 원재료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정말 높아요. 더 이상 가격으로만 경쟁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죠. 단순한 매운맛 떡볶이가 아닌 저렴하면서도 복합적인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러면서도 건강한 떡볶이 소스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떡볶이 맛집을 순회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요. 간식이 아닌 해장용으로 떡볶이를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거죠. 그래서 너무 맵고 자극적인 제품보다는 칼칼하면서도 감칠맛이 풍부한 떡볶이를 목표로 두고 소스를 설계했습니다.

 

 

호불호 없이 대중적이면서도 최고로 맛있는 소스라니, 편의점 소스 개발은 목표부터 쉽지 않군요.

네. 대개는 한 가지 음식에 하나의 소스를 적용하지만, 편의점은 다양한 제품에 동일한 소스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여러 음식에 두루 어울리는 범용성이 넓은 소스를 개발해야 하는 거죠.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웠는데, 지금은 초기 배합비를 설계할 때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는 노하우가 생겨 크게 힘들이지 않고 있어요.

 

 

 

 

  식품연구원의 자리는 아기자기한 데스크 소품 대신 원재료와 시료스푼 등 업무 관련 물건으로 가득하다. 

 

 

 

 

 

편의점 소스 개발자로서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면요?

편의점은 대한민국 푸드 트렌드를 가장 빨리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에요. 하지만 그 흐름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보니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적응할 만하다 싶으면 다른 제품이 물밀 듯 몰려오니까요. (웃음)

 

 

소스 개발자만의 습관도 생겼을까요?

제가 오늘도 아래위로 검은 옷을 입고 왔잖아요. 이게 제 유니폼이나 다름없어요. 소스에는 적게는 20개, 많게는 50가지 양념이 배합되는데요,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꼭 어디에 튀거나 묻더라구요. 열심히 빨래를 해도 색이 잘 안 빠져서 언젠가부터 양념이 묻어도 티가 잘 안 나는 검은 옷만 입게 됐습니다.

 

 

 

 


 (좌) 배합비를 설계할 때에는 꼭 전용복을 입는다역시 상하의 모두 검은색이다.   

 (우) 현장 답사나 관능 검사, 배합비 설계 못지않게 데스크 업무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업무다. 

 

 

 

 

손과 팔에 크고 작은 상처도 눈에 띄어요.

아, 이런 상처는 금방 아무니까 괜찮아요.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다 이런 상처가 있을 거예요. 소스를 개발하다 보면 원료를 뜨거운 불에 졸일 때가 자주 있거든요. 사실 이 정도 화상은 다친 줄도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되기도 해서 요즘은 약도 잘 안 발라요. 놔두면 아물더라고요. (웃음)

 

 

열정이 느껴집니다. (웃음) CU의 소스 개발자로서 꿈이 있다면요?

무엇보다 CU의 대표적인 상품을 제 손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한때 반짝 인기를 얻는 게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며 오래오래 사랑받는 상품이요. 부모 세대부터 아이들까지 모두가 “아, 그거 소스 맛있지”하고 바로 말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고 싶어요. CU라는 두 글자만으로도 인정 받는,  일명 ‘CU 시그니처 소스’ 개발자! 그게 제 목표랍니다.

 

 

 

 

인터뷰. 김종민 책임(BGF리테일 HMR팀)

글. 김송희

편집. 성지선

사진. 안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