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신이어마켙 심현보 대표, 전략MD팀 권선영 책임

매거진 2024.05.02

 

‘살아가면서 흼내보자’ ‘너의 마음 가는 대로 행해라 억지로 하면 안 되지’ ‘조급해지 마렴’ 신이어마켙에 들어서니 주변이 온통 할머니 글씨입니다. 삐뚤빼뚤, 맞춤법도 지켜지지 않은 글씨가 이렇게 따뜻할 일인가요. 긴 문장도 아닌데 누군가 한참 등을 토닥인 듯 마음이 사르르 풀립니다. 올 5월, 신이어가 준이어에게 CU의 상품들로 반갑게 인사합니다. “친구들이 최구야!”

 


 

 

2023년 12월 기준 폐지 1kg를 주워 얻는 수입은 154원. 그나마 수도권에서 가장 높게 쳐주는 가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지요. “이거 안 하면 밥은 어떻게 먹고 또 방값은 어찌 내나” 어르신들의 한탄을 들으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사회적기업 아립앤위립의 소셜 브랜드 ‘신이어마켙’은 이렇듯 폐지를 줍는 저소득층 어르신들께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업무협력을 맺은 복지관을 통해 참여 어르신을 모집한 뒤, 재료를 마련하고 공간을 섭외하여 창작 환경을 조성하죠. 어르신들이 만든 창작물에는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이 창작물을 제품에 적용해 굿즈를 만듭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건 단연 ‘할매할배 손글씨 스티커’. “밥 잘 챙겨 먹고 그래야 힘이나” “너무 잘하려 하지말고 적당이해라” “허허 우서요” “그까짖꺼” 맞춤법이 틀리고 조금 알아보기가 어렵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 제품화합니다. 우리 손주들을 향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너른 사랑이 정성껏 적은 글씨에서 진하게 묻어나거든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CU도 신이어마켙의 취지에 힘을 보탰습니다. 5월에 출시되는 상투과자, 감말랭이, 쑥쿠키 등의 할매니얼 간식과 김밥, 도시락 등 간편식에 우리 어르신들의 반가운 사랑을 가득 담은 것인데요. 서툴지만 정성이 듬뿍 들어간 어르신들의 작품이 CU를 만나 고객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줄 예정입니다. ‘신이어가 준이어에게 보내는 응원’을 주제로 뭉친, 신이어마켙 심현보 대표와 BGF리테일 전략MD팀 권선영 책임을 만났습니다.

 

 

 



 

 

2017년 본격적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 만들기에 투신하셨다고요. 홀몸어르신 등 소외계층 문제에 원래 관심이 있으셨나요?

심현보 대표(신이어마켙)   전혀 몰랐죠. 저는 스포츠 마케팅 일을 하는 보통 직장인이었어요. 하지만 직장에 다니면서 현실에 부딪치기도 했고, 갈등하던 차에 기왕이면 사회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게 됐어요. 많이 어렸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해오던 일을 접고 과감히 새로운 일에 전념하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요. (웃음) 물론 지금은 참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CU와 콜라보레이션한 상품이 정말 다양하네요. 손잡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권선영 책임(BGF리테일 전략MD팀)   저희 MD들의 업무 중 하나가 함께할 창작자나 브랜드를 발굴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일러스트 페어에도 자주 나가는데요. 1020 고객들이 특히 몰리는 부스가 있어 살펴보니 바로 신이어마켙이었어요. 이전에도 눈여겨보던 브랜드였는데, 젊은 세대의 호응이 좋은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죠.

 

 

 


 

 

 

김밥, 도시락, 사라다샌드는 물론 감말랭이, 쑥쿠키, 상투쿠키, 막걸리와 군고구마…. 뭔가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들이에요. (웃음) 할매니얼 트렌드라고도 하죠?

권선영 책임   정확히 보셨어요. (웃음) 약과나 개성주악 등 할매니얼 트렌드는 계속해서 인기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이번 가정의 달을 맞이해 할매니얼 메뉴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상품을 선정했어요. 또 할머니가 손주에게 배가 터질 만큼 고봉밥을 먹이듯이 (웃음) 양을 풍성하게 늘리자는 목표를 세웠죠. 가장 중요한 건 상품 패키지에 어르신들의 글씨와 그림을 입히자는 것이었어요. CU를 이용하는 ‘준이어’들을 비롯해 모든 고객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심현보 대표   신이어마켙은 이전에도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 왔어요. 그런데 이번 CU와의 콜라보레이션은 더 특별했죠. 우선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일상 플랫폼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브랜드를 알릴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고, 어디서나 편의점은 동네 사랑방처럼 친숙한 공간이라 어르신들께서도 좋아하실 것 같았거든요.

 

 

신이어마켙은 어르신들의 글과 그림을 기반으로 여러 굿즈를 창작하죠. 이번에 CU 상품에도 어르신들께서 직접 그림을 그리셨어요. 어려워하시진 않으셨나요?

심현보 대표   항상 어려워하시는데. (웃음) 이번엔 더 그러셨어요. 비슷하게 그려야 하는 실물이 있으니 더 욕심도 내셨고, 그만큼 그리는 속도가 더뎠어요. 어르신들이 그림을 그리시면 저희 디자이너가 스캔해서 디자인화하고, BGF리테일 디자인팀에서 패키지에 적합하도록 살짝 가공을 하시는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죠.

권선영 책임   잘 그린 그림이어도 막상 패키지에 적용하니 어색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작화를 요청드리곤 했는데요. 두 번, 세 번 다시 그릴수록 더 좋은 그림을 주시니까 저희도 욕심이 나더라고요. 결과적으로 굉장히 완성도 있는 디자인이 나온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어르신들이 그림 그리시는 영상을 봤어요. 굉장히 공들여 그리시더라고요.

권선영 책임   글씨 쓰시고 그림 그리시는 과정을 직접 본 저도 참 놀랐어요. 기대보다 더 실력이 뛰어나셔서요. 어르신들을 인터뷰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그림을 그리면서 느끼신 점, 그동안 어떤 인생 역경이 있었는지 등 다양한 스토리를 들으면서 크게 감동받았어요. 짧은 한 마디에도 그분들의 인생이 전해온다고 해야 할까요. 브랜드 ‘신이어마켙’의 취지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또 다른 울림이 있더라고요.

 

 

어떤 말씀이 특히 인상적이었나요?

권선영 책임   91세 어르신이셨는데요. “내가 이 나이에 일이 있을 줄 몰랐다”고 하신 게 기억이 나요. 단순히 수입을 떠나서 자신이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고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한다는 게 참 좋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아, 이분들께는 이 일이 그저 돈을 번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는구나. 나를 찾는 곳이 있고, 날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 삶에 정말 큰 기쁨을 주는구나’ 깨달으면서 저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신이어마켙에서 함께 일하는 어르신이 지금 총 몇 분이나 되죠?

심현보 대표   정규직으로 함께 일하는 분은 한 분이고, 그 외에 매주 창작을 함께하면서 일하는 분은 총 열 분이에요. 어르신들이 잘 그리시든 못 그리시든 그 작품을 그대로 살리자는 게 저희 브랜드의 철학이거든요. 어르신들의 창작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중요해요. 디자이너가 삐뚜름한 선을 수정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요. 글씨 맞춤법이 틀려도 고치지 않고요. 그 삐뚤삐뚤 글씨 속에 어르신의 손아귀 힘이 들어있으니까요. 더 깊게는 글씨 안에 어르신들의 세월이 다 담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할 때에도 어르신들의 글씨와 그림 원본을 수정하지 말자는 걸 기본적인 원칙으로 정했죠.

 

 

 



 

 


그림을 따로 배우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완성본을 보면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요.

심현보 대표   전문가를 초빙해 그림을 가르치는 과정은 없어요. 타고난 감각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세요. 저희가 매주 수요일에 모이는데, 한 어르신이 ‘화요일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유를 물으니 ‘여기 오는 게 설레어서’ 라고요. 참여하시는 어르신들 대부분이 홀몸어르신이신데 이곳에 와서 사람들도 만나고, 정성껏 그린 그림이 또 쓰임새가 있다고 하니 좋으신 거죠. ‘매주 여기 오는 게 두근거린다’고 하시는 그 한마디에 어르신들의 마음이 다 담겨 있다고 느껴요.

 

 

신이어마켙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겠어요.

권선영 책임   신이어마켙 직원 분들과 어르신들의 유대 관계가 굉장히 끈끈했어요. 누가 누굴 돕거나 고용하는 관계가 아니라 정말 ‘같이 살아가는 회사’라고 느꼈죠. 저희가 미팅을 할 때마다 신이어마켙에서 어르신들의 손글씨로 만든 스티커를 주곤 하세요. 그런 작은 선물에서도 브랜드의 철학이 느껴졌고요.


어르신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란 무엇일까요?

심현보 대표   우선 어르신들 세대의 특성을 알아야 해요. 청년과 노년 사이에는 큰 갭이 있죠. 체력도, 문화적 배경도, 현재 처한 환경도 모두 달라요. 일자리를 창출할 때 이러한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봐요. 또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이 갖춰진 환경 속에서 어르신들만 일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저희 조직은 청년과 어르신이 함께 일하고 있어요.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일자리’가 바로 신이어마켙이 지향하는 일자리입니다. 함께해야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 배우기도 하면서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거든요.

 

 

어르신들과 함께 일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있다면요.

심현보 대표   저희와 함께 일하는 어르신들은 무척 성실하세요. 평생 성실하게 사셨던 분들이고요. 지금도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부분에서는 정말 훌륭한 책임감을 보여주십니다. 이번에 CU와 함께한 그림도 그랬어요. 저희가 ‘이 정도면 충분해요’ 해도 더 해보겠다고 하시거든요.

흔히 사람은 안 변한다고 하지만 어르신들을 보면 그 말이 틀린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처음 오셨을 때 ‘난 그림 못 그려, 아무 것도 못해’ 하셨던 분이 계셨는데요. 계속 응원해 드렸더니 차츰 자신감을 되찾으시더라고요. 어느 날은 그분이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오신 거예요. “오늘 어디 친구분들 만나세요?” 여쭈었더니, “여기 오는 게 너무 기분 좋아서, 어제 시장에서 천 원짜리 립스틱 사갖고 발랐어” 하시더라고요. 정량적으로는 절대 확인할 수 없는 개인의 변화죠. 일이 주는 활력이 마음의 어둠까지 밝힌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과거에 심현보 대표님이 ‘최종 목표는 시니어들이 직접 제조하고 운영하는 F&B사업’이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CU와의 콜라보레이션이 더욱 뜻깊겠어요.

심현보 대표   그동안 문구류나 다양한 상품들을 만들었지만 이번 콜라보레이션을 계기로 좀 달라질 것 같아요. 이번 상품이 출시되면 소비자 반응이 어떨지, 신이어마켙은 또 얼마나 알려질지 벌써 기대가 돼요. 어르신들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올 것이고 상품에 대해서도 리뷰가 있겠죠. 신이어마켙이 진짜로 하고픈 이야기를 확산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노인세대와 청년세대의 연결이 신이어마켙의 브랜드 목표이기도 하죠. 이번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CU의 주 고객층인 어린 세대도 어르신들의 메시지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권선영 책임   상품에 여러 장치를 마련해 뒀어요. 응원과 격려를 담은 어르신들의 손글씨를 스티커로 만들어서 상품에 넣었거든요. 띠부띠부씰처럼 상품에서 랜덤으로 응원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 거죠. 상상해보세요. 바쁜 일상에 지쳐 도시락을 샀는데, 거기에 ‘힘내서 밥 맛있게 먹어라’고 쓰인 할머니의 글씨를 발견한다면 얼마나 힘이 되겠어요. 오늘 하루는 이거 보고 힘내셔라, 이런 마음을 담았습니다.

심현보 대표   어르신들은 항상 뭐라도 나누고 싶어 하세요. 한 번은 쌈짓돈처럼 뭘 비닐에 싸오셨는데, “어디서 받은 사탕인데 너무 맛있어서 나눠 먹으려고 가져왔다”고 하시더라고요. 작은 것도 서로 나누려는 것, 그게 정이잖아요. 이번 상품에서 세상 모든 손주들에게 보내는 어르신들의 깊은 정이 뚝뚝 묻어나길 바랍니다.

 

 

 

 

글. 김송희

사진. 안호성

편집. 성지선